프로그레시브락이란 무엇인가?

음악학적 관점에서 본 프로그레시브 록의 정의와 특성

[진병관, floycrim@hitel.net]

서우석교수님이라구 서울대 음대 작곡과에 계시는 분인데 엄밀히 얘기하면 매니아로서의 글은 아니구요(클래식을 하시는 분이니까) 관찰자로서의 시각에서 말씀하신 글인데..락의 개념적 설명과 함께..상당히 뚜렷하게 프로그레시브를 기술하셨더군요.

프로그레시브 락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프로그레시브 락은 크로스오버나 퓨전이나 마찬가지로 명료하게 파악되지 않는 용어이다. 음악의 양식을 가리키는 말은 그것이 생성되고 있는 시기에는 항상 그러한 모호성을 지닌다. 지금 우리가 분명히 하고있는 소나타, 심포니등의 고전음악형식의 용어도 그것이 발생되어 자라날 때에는 모호한 용어였고 그뜻이 자주 바뀌는 용어였다.

록음악에서 쓰여지는 여러용어에는 형식적으로 차이가 있는 음악을 가리키려는 의도가 담겨있지만 그보다는 양식적인 차이를 기리키기위한 의도가 더 많이 담겨있는 듯이 보인다. 양식의 차이라는 것은 다음과 같은 비유로 이해하면 쉽게 파악된다.

우리가 인쇄한 활자에 여러 글씨체가 있는 것을 안다. 지금 독자들이 읽고있는 이글은 양식적으로 같은 활자들이다. 별로 의식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이 양식적 공통성은 흔히 보지 못하는 철자가 나타나 그 활자를 새로 만들어야할 때 깨닫게 된다. '쉐'라든가 '묑'과 같은 활자가나타나면 그것이 양식적으로 동일하게 만들어졌을 경우 불편없이 지나가지만 양식적으로 다를 경우엔 눈에 띈다.

글자는 서로 다른데도 불구하고 같은점이 있다고 느끼는 곳에 양식의 동일성이 있다. 그같은 점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라고 하면 문제는 대단히 까다로와진다.

록음악에서도 사정은 같다. 프로그레시브 음악은 확실히 서로 다른 음악이지만 같은 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 같은점이 무어냐고 설명하라고 하면 간단하지가 않음을 느끼게 된다.

간단히 줄이면 프로그레시브 락의 정의는 간단하지 않으며 지나간 과거의 일이 아닌,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일이기 때문에 그 정의는 더욱 어렵다. 우리는 프러그레시브 락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락 음악 일반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야겠다.

록의 본질은 인간 존재의 전체성 표현

빌 헤일리의 '하루종일 록을(Rock around the clock)'이 선풍적인 인기를 끈지 30여년이 지난 지금 록은 세계의 음악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을 한음악에 묶을 수 있었던 음악의 쟝르로 인정되고 있다. 주로 젊은 세대를 묶은 록음악은 인종과 국가의 차원에서도 역사상 유래가 없는 경우이다.

록이 언어, 민족, 문화권을 넘어서 전세계인구의 상당부분에 영향을 미쳤던 이유가 무엇인가는 아직 쉽게 해명되고 있지 않다. 중동이슬람문화와 인도 그리고 중국대륙을 제외하고 나면 거의 전세계의 청소년들을 음악의 세계로 몰고 들어간 록은 여러사람에 의해 여러각도로 검토되었다.

록이 중동 인도 중국에 파급되지 않은 이유는 음악적인 이유라기 보단 정치적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소련에서는 늦게나마 록이 들려지게 되었고 중국은 앞으로의 추세를 보아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록음악이 인도에서 어떤 반응을 받고 있는가의 설명은 록음악의 음악적 본질을 드러내는데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온몸으로 받아 들여지는 음악, 즉 몸과 마음의 전체로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신체적 존재의 전체성이 동원되어 음악과 만나게 된다는 뜻의 록음악은 이미 인도의 음악과 그 정신적 태도가 같음을 알게 해준다. 따라서 많은 록음악 연주자들이 70년대 이후 인도의 음악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록의 유럽전파와 그 의의

음악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소리를 모아 논리적인 구성체를 만들려는 노력과 그 소리를 우리의 신체속에 흡수해 버리는 신체 반응의 두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들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을 때 그 말의 뜻을 듣는 것과 그 말의 어투를 듣는 것과 유사하다. 그러나 그 둘이 항상 함께 작용하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있다. "참 좋다"는 말도 발음의 억양에 따라서 "나쁘다"는 반어가 된다.

록음악의 신체 반응으로서의 측정은 록 연주자들의 무대위에서의 몸짓으로 나타난다. 무대위에서의 몸짓은 다른 어떤 음악적 판단기준보다 록의 특성을 잘 말해 준다. 리틀 리쳐드의 건반곡예, 기타를 가지고 무대를 가로지르고 쪼그렸다 뛰어오르는 장기를 가진 척 베리의 오리걸음, 머리가 바닥에 닿을때까지 허리를 젖히는 빌 헤일리의 색소폰다루는 재주, 오래전에 잊혀진 가수, 처비 첵커의 스포츠적인 몸짓인 트위스트, 엘비스 프레슬리의 엉덩이 돌리기가 그런 몸짓들이다. 이런 몸짓은 기성세대들에겐 창피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 몸짓은 표현을 위해서라기보단 젊은이들의 의식적으로 드러내고 싶은 사회적 지위의 상징이었다. 그 상징은 비교적 풍요한 상황에서 성장한 이들이 '노동과 소비'라는 기계적 몰인정성에 대한 자신의 개인적 실체를 밝히고 싶어하는 반발이었다.

미국에서 젊은이들의 호응을 얻은 록이 영국에서 금기로 여겨졌던 것은 이와같은 록음악의 현장에서 드러나는 분위기(아우라)때문이었다. 록큰롤이란 명칭자체가 블루스언어에서 따온 말로서 성행위를 완곡하게 표현한 용어였기에 청교도적인 영국인들에겐 충격적이었다.

20세기 음악의 정신적 뿌리는 아프리카

서양음악사의 긴 맥락에서 볼 때 록 음악은 어떤 시야에 들어올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아직 시기상조인 감이 있다. 그러나 록이 세속음악으로서 세계적 현상이고 지속적 현상이라는 점에서 이 현상은 역사적 조명을 받아야 할 것이다.

서구의 음악은 항상 이분법에 의해 나누어졌다. 희랍이후 가장 오래 지속된 음악의 이분법은 종교음악과 세속음악이다. 그리고 19세기이후 시민사회가 사회계층으로서의 중요성을 띠면서 예술음악과 세속음악의 이분법을 낳았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음악은 어느지역에서 발전한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지만 그 요소로 보아서 음악은 아프리카에서 발전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뜻은 장소로서의 아프리카가 아니라 음악의 정신적 영토로서의 아프리카이다. 세속음악에서의 아프리카음악의 영향은 미국대륙에서 일어나 1950년대 이후 록음악으로 한가락의 집대성을 이룬다.

1970년대 이후 프로그레시브 록은 아프로-아메리칸적인 세속음악이 유럽각나라의 전통적 예술음악과 만나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프로그레시브 록의 중요한 특징들

프로그레시브 록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록음악의 박자적 특징인 비트를 벗어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프로그레시브가 다 비트를 벗어나 있지는 않다. 그러나 그 벗어남이 그들의 꿈처럼 음악에 드리워져 있음을 보게된다.

록음악을 그토록 강하게 지배하고있는 비트는 무엇을 뜻할까? 비트는 다음의 세가지 관점에서 파악된다:

  1. 혼돈된 음향세계를 파악하기위한 질서로서의 시간적 단위
  2. 사회적 통치체계로서의 강력한 질서를 상징하며(다시 말해 민중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적 상징)
  3. 성적 격렬성의 간접적 상징

록이나 프로그레시브 이거나 간에 강렬한 음향은 청소년이나 도시근로자가 도시에서 접하는 모든 소음을 무력화시킬만큼 강렬한 것이다. 도시의 소음은 역사적으로 20세기 이외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소리이며 공장의 소음역시 인류가 지상에 태어난 이후 만나본 적이 없는 지속적인 자극이다.

이 혼돈의 음향세계를 압도하며 그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 록의 비트이다.

그러나 규칙적 박자에 대한 복종은 정치적 상징일 수 있다. 시간의 패턴화는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비트로서 그 엄격성을 강조하는 것은 기존체계에 대한 순응을 강요하는 도식일 수가 있다.

이런의미에서 프로그레시브가 비트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는 것은 세계인식의 상투성에서부터 벗어나려는 것이고, 정치, 사회적 속박에서의 자유를 상징하는 것으로 성으로부터의 해방 즉 초월적 명상(Transcendental Meditation)을 뜻한다. 프로그레시브가 인도의 음악에서 영향을 받고 있으며 또한 70년대 미국을 휩쓸었던 초월적 명상의 유행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은 퍽 흥미로운 일이다.

프로그레시브 록의 미래, 전망, 운명

유럽각국의 프로그레시브는 자국의 특징을 드러낸다. 이탈리아 음악의 전통을 현악기에 드러내는가 하면 교회 오르간의 소리와 록의 비트를 섞어 수난곡을 만든다. 이탈리아의 IL PAESE DEI BALOCCHI와 LATTE E MIELE가 그러한 그룹이다.

서독의 FAUST의 강력한 전자음향과 동독의 KARAT에서 느낄 수 있는 바하의 냄새는 이들이 독일의 프로그레시브임을 말해주고도 남음이 있다.

스페인의 LOS CANARIOS의 4계는 비발디와 록비트를 무섭게 큰소리로 섞어 놓았으며 프랑스의 ONIRIS, 그리고 벨기에의 UNIVERS ZERO는 프랑스 음악의 섬세한 전통을 담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들에게서 기대해서 안되는 것은 조용한 섬세함이다. 프러그레시브 음악에서 우리가 기대해야할 맨 마지막 사실은 조용함이다. 즉 프러그레시브 그룹들은 음악 안에서의 조용함을 싫어한다.

그들이 추구하는 조용함은 그 음악이 끝난 다음에 찾아온다. 음악이 끝난 다음의 이 세계의 조용함은 다른 어떤 음악이 주지 못하는 '일상으로 돌아옴'의 효과이다.

그러나 프로그레시브 록의 또 하나의 두드러진 특징은 킹 크림즌에 나타나는 명상성과 비트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이다. 비트로 부터의 완전한 독립은 록 세계로 부터의 이탈을 뜻한다. 이 이탈이 역사적 가정으로 성립되고 있지 않고 있는 모습은 과거의 음악의 발달 역사를 볼때 20세기의 한 아이러니이다.

프로그레시브 음악의 운명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냐 하는 문제는 예술검열이 앞으로 어떤상황에 놓일 것인가에 대한 고찰 일 수 있다. 그 검열도 눈에 보이는 금지조치가 아니고 보이지 않게, 느껴지지 않게 이루어지는 과정일 것이다.

프로그레시브가 텔레비젼 방송과 무관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이 예술분야의 앞으로의 운명은 매스미디어의 모든 분야에 의해 운명지워질 것이다. 이에 대한 현재의 도전은 한정부수의 음반을 제작하고 숨어버림으로써 매스컴에게는 신화적 전설적 존재로 남으려는 유럽의 많은 프로그레시브 아티스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