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공동 개최 기념
한일 유러피안락 매니아들의 만남
음악을 통한 국경을 넘나드는 우정
[정철, zepelin@popsmail.com]
오늘[2001 07 21 토] 그동안 메일만 주고받았던 일본인 K씨를 만났다.
K상이 맞겠구먼.
요즘이 연휴가 몽창 낀 시즌이라 부인과 함께 한국에 놀러온거란다.
일본의 연휴 시스템
여기서 잠깐 일본의 연휴에 대해 한마디.
K상이 보여준 일본의 달력에는 연휴가 정말 무지막지하게 있었는데...
그것은 경기침체에 빠져든 일본 정부가 고안한 것으로...
연휴를 묶어두면 사람들이 놀러가니까 소비가 촉진되고
그래서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경제효과를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첫 만남
어쨌거나 홍대앞 파파이스에서 핑크 플로이드 티를 입고있는 놈이 나라고 말해주었는데...
약속시간이 되자 '저 양반들이 내가 찾는 사람들이군' 이라는 생각이 절로드는 커플이 나에게로 다가왔다.
K상은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My Bloody Valentine의 러브리스Loveless 앨범재킷을, N상은 러쉬Rush의 백골그림이 그러진 티를 입고있었다.
나중에 이 얘기를 해주었더니 서로 마주보며 웃더구먼.
K상 왈 '이런 옷을 입고다니는 사람은 래어rare하지요.'
[참고로 외국 애들과 판 바꾸는 사람들에게 mega rare, a must 따위의 말들은 무척 익숙하다. 서로 뻥칠때 흔히 쓰거덩.]
만나자마자 '안녕하세요 정철씨, 만나서 반갑습니다.'라고 유창(?)하게 우리말 인사를 하는데 나는 고작 '하이 K상'이라고밖에 못했다.
그리고 내가 뭔가 말하려고 버벅거리는데 갑자기 K상이 사전을 하나 꺼낸다. 일한-한일 겸용 사전이다.
마이도스에서의 쇼핑
내가 그전에 시완레코드 카다록을 보내주었더니... 꼭 마이도스에 들리겠다고 해서 같이 갔다.
그는 가서 주욱 뒤적거리더니 한 장을 집었다. 북구쪽 애들이었는데 나는 듣도보도 못한 애들이었다.
좋은 가게입니다...이러면서 한참 뒤지더니 고작 그가 집어든것은 한 장.
예전에 그가 구하는 목록을 보내주었었는데 나는 보고 기겁을 했었다.
그래도 이바닥에서 뒹군게 한 십년인데... 어떻게 아는 애들이 하나도 없나싶어서.
그가 한장을 집어든 것도 일본보다 싸서였다...-_-
둘이 뒤적거리면서 그가 권해준 명반들이 많았는데... 죽입니다exciting를 연발하면서 말이다.
물론 뭐였는지 기억은 안난다.
하지만 그가 모르는 것도 있었나부다.
내가 코라이 외룀(? Korai Orom)이 보이자 이거 죽이는 헝가리 싸이키다 라고했는데 '오오 그런가요?'이러면서 덥석 집었다.
K상의 정체
이 양반이 어떤 사람이냐면...
93년에 마뀌Marquee지에 글을 쓰던 사람으로 필진중에 가장 어린축이었다.
그리고 내가 그동안 판을 교환하면서 이런 저런 얘기한 기억에 의하면...
거의 내가 본 최고의 음반 수집 몬스터였다.
보다보다 러시안 데스 메틀까지 듣는 사람은 처음봤다...-_-
마뀌에 글을 실으면 고료가 얼마나 되냐고 물어봤더니...
하나, 둘, 셋, 사 이렇게 손가락을 세면서...한 30초 후에...
'5천원입니다!'
귀여운 아저씨다. 화이부 헌드레드 엔이라고했어도 되었는데...^^
어쨌거나 고료가 그렇게 싸다니 정말 K상 말대로
마뀌는 아마추어들이 만든 매우 프로적인 잡지인가보다.
음악 이야기
나중에 얘기해보니 이 양반은 피쉬Phish도 잘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확실히 전방위 괴물은 되기 어렵군이라는 생각을 다시한번.
피쉬와 오이스터헤드Oysterhead에 대해 죽이는 잼세션 밴드라고 해줬더니,
그리고 오이스터헤드에는 폴리스Police의 드러머 스튜어트 코플랜드Stewart Copland와 프라이머스Primus의 베이스 레스 클레이풀Les Claypool이 피쉬의 기타리스트와 함께하고 있다고 해줬더니 N상이 아 들어본적이 있는것 같다고
자기는 프라이머스의 포스터로 한쪽 벽을 도배했다면서 들어봐야겠단다.
[아무래도 오이스터헤드라는 이름은 라디오헤드를 패로디한것 같다는 느낌]
이 팀[K + N]은 음악 취향이 비슷하다가 결국 결혼까지 꼴인한 팀으로...
나중에 결혼해보니 서로 겹치는 시디가 한 천장은 되더라는...
만나게 된 계기도...N상이 마뀌지의 K상에게 프로그레시브 락에 대해 물어본 것이라고 했다.
웃으면서 K상은 N상이 자기의 제자라고 한마디.
얘기하면서 재미있었던 것은 '저는 라디오헤드Radiohead같은것은 절대 안듣습니다. 마이너가 아니면 안키웁니다.'라고 말하던 것.
나도 뭐 절대는 아니지만 확실히 마이너 위주로 키우긴 하니깐.
어어부/이상은 공연
어어부/이상은 공연을 보러 쌈지 스페이스로 올라갔다.
어디서 들었는지 어어부는 이미 알고있어서 내가 모두 구해주었는데... 정작 일본에서 활동한 이상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어쨌거나 그는 공연에 대만족해서 이상은의 시디를 샀다.
실수로 내 가방에 넣은 바람에 다음 트레이드때나 듣게되겠지만 말이다.
의외로 어어부보다 이상은의 공연이 더 파워풀했다.
그것도 이상은은 메가 마이너 히트작이자 마스터피스인 공무도하가의 곡들을 한곡인가밖에 부르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어어부는 온갖 히트곡(?)들을 총망라했었다.
연륜인가?
물론 이상은의 백밴드를 해준 어어부도 훌륭했다.
한국 음식 체험
공연끝나고 밥을 먹어야하는데...K상 말하길 어제는 불고기를 먹었으니 오늘은 생갈비를 먹자고.
일본에서는 불고기나 갈비가 천문학적으로 비싸서 먹기 겁난단다.
아무래도 그가 가장 만족한 것은 우리나라 물가의 가격대 성능비가 너무 좋았다는 사실인것 같다.
'시디도 비싸고 전철비도 비싸고 공연입장료도 비싸고 고기값도 비싸고...
정철씨가 일본에 오려면 돈 한보따리 싸와야 할겁니다.'라고 농담까지.
고기먹는데 싸먹는것이 익숙하지 않은듯 내가 싸먹으니 따라 싸먹었다.
'한국의 러버lover들은 여자가 고기를 싸서 남자 입에 넣어줍니다'그랬더니
N상 '너 잘걸렸다!'는 듯 고기에 쌈장잔뜩에 불그스름한 야채에 김치에 잔뜩 싸서 먹인다.
K상은 매운것을 잘 못먹는데 그래도 먹느라고 죽을상.
나중에 '남자도 받아먹었으면 싸줘야죠'라고 해줬더니...
K상은 아까 메뉴 그대로에 마늘까지 넣어서 싸주더만.
아주 훌륭(!)한 커플이라 하지않을 수 없었다.
선물 교환과 국악 이야기
밥먹고 맥주 한잔 더 빨러 신촌쪽으로 갔다.
앉자마자 맥주시키고 바로 선물을 주었는데...
K상에게는 빅토르 최의 얼굴이 찍힌 티를,
N상에게는 마쉬마로의 얼굴(?)이 찍힌 티를 주었다.
빅토르 최에 대해서는 예전에 말해준 적이 있어서 K상이 알고있었고...
마쉬마로는 지금 한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캐릭터라고 말해주었더니 다레팬더같은 놈이냐며 웃는다.
K상은 한국 전통음악에 정말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있다.
그는 나에게 국악기에 대해 설명이 잘 되어있는 책을 구해달라고 했고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몸을 움직이게 하는 국악을 소개해달라고 했다.
[내가 권해준 국악은 대개의 경우 프리 임프로비제이션에 가까운 연주들]
N상 하는말 '일본의 전통음악은 너무 정적이어서 졸 수밖에 없다'
(이때의 바디랭귀지는 조는 포즈)
일본음악이 극적인 형태로 나타난 '노'에 대해 얘기했는데...
노가 무척이나 정적인 것에 비해 판소리가 얼마나 역동적인지 말해주었다.
일본의 극단적 프로그레시브
K상이 권해준 일본의 극단적extreme 프로그레시브 락중에 가장 침튀기면서 추천한 것은 (인종적인것 뿐만 아니라 내용이나 음악까지) 토종 일본밴드 마리아 칸논(성모 마리아와 관음보살에서 딴 밴드명)이다.
이 밴드의 베이스 주자는 너무 음악적으로 고뇌하던 나머지 명반 이누-지니(개죽음)를 스튜디오 라이브로 내놓고 자살했다고...-_-
K상과 N상이 모두 입을 모아 칭찬하는 이 밴드는 정말 지나가는 맷돼지를 날로잡아 바로 돌도끼로 썰어 물어뜯는듯한 느낌을 주는 아주 쌩raw음악을 들려주는 놈들이다.
K상 말하길 라이브는 더욱 더 죽인다고.
확실히 그런 익스트림 뮤직은 라이브로 들어야 제맛(?)이긴 할게다.
내가 혹시 그놈 할복(이때의 바디 랭귀지는 배를 따는것)했냐고 물었더니
N상이 웃으며 절대 아니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자살할 때 보통popular 자살하냐고 물었는데
N상이 황당해하면서 그건 별로 안쓰는 소수의odd 방법이라고 했다.
작별과 마뀌지 선물
어쨌거나 마쉬마로와 빅토르 최에 썩 만족한 그들도 내게 선물을 주었다.
바로 마뀌지 과월호 9권.
9권이나 되는 책을 들고오느라 힘들겠었다고 했더니too heavy present...
말을 잘못알아들었는지 무거운 선물가져와서 미안하다고하더라.
이건 완전히 레드 제플린이 울부짖은 의사소통단절Communication Breakdown이로구먼.
어쨌거나 무척 기쁜 선물이었고 그가 스스로 말하길 울트라 레어에 상당한 고가로 거래되는 것이라고 했다.
아마도 자기가 보던 것을 준 듯 했다.
게다가 특집을 보니 나에게 의미있는 기사가 실린것들로 골라 빼온 티가 났다.
무척 고마왔다.
나도 손님대접하느라 돈도 좀 쓰고 스케줄도 잡아주는 등 신경을 썼지만 K상 부부도 나를 너무 생각해주었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시청에서 종로쪽으로 전철태워 보냈다.
그들은 안녕히계세요, 굿바이, 사요나라 등을 연신 말했다...^^
나는 막차 끊기기 직전에 간신히 차를 잡았고.
마치며
오면서 마뀌를 살펴봤는데 일본인들의 자료정리란 정말 놀라울 따름이고..
마뀌를 베껴먹은 모 잡지에는 다시한번 실망을 했다.
그나마 철저하게 베끼지도 못했지만 말이다...-_-
쪽팔려서라도 다음에는 K상에게 뮤지컬박스를 보내야겠다.
어설프기 짝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방인과의 대화는 무척이나 즐거웠으며 나를 지적으로 자극했고 생산적이었다.
언젠가 막연히 생각했던...
코스모폴리탄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다시한번 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매일 야근만 하면 영어고 일어고 암것두 못하는데...T_T
라고 핑계를 대고있는 나를 보니 슬퍼진다.
오늘 교환한 슬랩 해피Slapp Happy의 2000년 일본실황을 들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