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 암울락을 즐기는 형. 71(?)
나에게는 NEW TROLLS 의 concerto grosso per 1 에 얽힌 자그마한 추억 같은 것이 있다. 내가 뉴트롤즈의 아다지오를 들었던 것은 앨범을 손에 넣기 훨씬 전의 일이었다. 아마도 전영혁씨가 진행하던 FM 25시를 통해서였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여러 음악을 비교적 가리지 않고 골고루 듣는 편이 되었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음악 분야는 여전히 메탈과 프로그래시브이지만, 그토록 싫어하고 저주하던 서태지의 2집 음반을 살려고 계획중이기도 하고 쳇베이커와 니나 사이먼을 좋아하며 김영동의 명상음악을 듣기도 하고, 클래식 음반들 마저 가끔식 사기도 하는 잡식성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아다지오를 처음 라디오에서 들었을 당시의 나는 철저한 메탈광이었다. 세상에 음악은 오로지 해비메탈 밖에 없으며 그것만이 진정한 음악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그 당시 슬레이어와 메탈리카, 메콩델타, 소돔, 퍼제스트에 흠벅 취해서 헤비메탈, 특히나 뜨래쉬나 블랙메탈밴드가 아닌 밴드의 레코드는 수집적 차원(?)에서만 기계적으로 판을 사모았을 뿐, 나의 머리속에는 언제나 공격적이고 흑마술적인 밴드들의 모습만이 가득했다. 나에게는, WASP 의 블랙키 로울리스가 무대 위에서 피를 들이마시고 날고기를 썰며 나신의 여인을 고문하던 극악스럽던 모습만이 음악의 전부였던 것이다.
이토록 편협하고 완고하던 나의 귀와 사고를, 어느날 갑작스럽게 뉴트롤즈라는 이상스런 밴드가 조용하고 감미롭고 애처러운 선율로 다가와서는 그 아래뚱부터 천천히 무너뜨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는 그때 당시 우리학교와 위치적으로 아주 가까운 청계천으로 백판을 사러 나가는 것을 큰 취미로 여기고 있었다. 그 음반이 라이센스로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던 나는 일주일에 몇번씩이나 모자라는 시간을 쪼개가면서 청계천을 헤매고 다녔다. 청계천을 드나들면서 깡패 같은 얄궂은 아저씨들에게 엉뚱하게 요상스런 책을 사라는 반 협박을 받으면서도 난 꿎꿎하게 뉴트롤즈의 아다지오를 열심히 찾아 다녔던 것이다.
하지만 몇년동안이나 그 판을 나는 구경조차 하지 못했는데, 나중에 대학 3학년이 되고서 어느날 고향으로부터 내 친구가 내게 놀러를 왔는데, 내친구는 우리학교에서 조금 놀다가 청계천 백판 가계를 구경하러 가자는 것이었다.
나는, 나와 친하던 후배 한명과 과 친구, 그리고 고향에서 올라온 그 친구를 데리고 청계천 백판 가게로 갔는데 그날 마침 신보들이 쏟아진 날이었다. 이름을 알지 못하는 낯선 헤비메탈 그룹들의 신보들이 많이 나와 있었지만 그리 특이한 것은 눈에 띄지를 않았다. 판을 뒤적이던 나의 손가락 놀림은 조금씩 지루해지면서 그것과 비례해서 성의없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판이 쌓인 몇줄을 그냥 지나가던 나의 눈에 그런데 갑작스럽게 뉴트롤즈라는 끔지막한 글씨가 찍힌 앨범이 눈에 보인 것이었다.
언더동 가족들이 모두 그렇겠지만, 그때의 심정을 모두들 이해를 할 것이다. 갑작스럽게 입이 옆으로 쭉 찢어지면서 안면 근육이 자신도 모르게 팽창을 하는 동시에 심장이 터질대로 뛰면서 잠시 그 전율에 눈을 아련히 감게 되지 않는가. 그때 내가 그랬었다.
나는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 아주 잠간 눈을 감고 의심 해 본다음 부리나케 뉴트롤즈를 빼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신이 났다. 정말로 미칠 듯이 신이 나서 만세를 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토록 기뻤던 적은 그렇게 많지 않은 듯하다. 기억나는 것은 중학교 1학년때 본조비의 데뷔원판을 손에 넣었을 당시와 중 2학때 WASP 1집을 발견했을때, 중 3학년때 로저달트리의 솔로앨범을 찾아내었을 때와, 최근의 데빌돌의 1집을 구했을때 등인데, 뉴트롤즈의 판을 구했을때 역시 나는 정신없이 들떠서 감격해마지 않았었다.
나는 그 앨범을 소중스레 안고 대학로로 나가서 그 친구들과 일단 엠티브이라는 클럽(?)가서 콜라를 마시며 뮤직비디오를 보았다. 거기서 나는 또 다른 그룹과 운명적(??)조우를 하게 된다. 그때 나는 그곳에서 초창기의 네이팜데스의 뮤직비디오를 보았던 것이다. 지금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그라인더/데스메탈계의 황제인 네이팜 데스의 음악은 그때 과격 그래봤자 슬래이어 정도가 최고로 알고 있었던 나에게 참으로 커다란 충격이었다.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보컬과 슬래이어보다 더한 리듬감과 속도감, 계속적으로 흔들리며 몇초도 제대로 한곳을 비추지 못하는 흑백의 카메라 앵글들. 흐릿한 울트라 비젼의 자막을 통해서 제대로 알파벳을 못읽은 나와 친구들은 (영어 실력이 딸려서이기도 하겠지만,) 네이팜 데스를 네팔데스라고 읽었다. 그 이후 그들의 존재를 모르고 있던 나에게 이 네팔데스(?)는 신비의 그룹이었다.
하여튼 나와 친구들은 그 길로 나와서 소주와 곱창으로 일단 간단하게 1차를 하고는, 아르바이트가 있는 친구 한명을 미리 보내고 맥주를 마시기로 합의 한후 흑맥주를 병으로 판다는 맥주집으로 갔다.
그때 시간은 5시가 조금 넘은 늦은 오후였는데 우리는 더운 날씨 탓에 맥주 10병을 금새 비우고,-참고로 그곳에서 파는 흑맥주는 용량이 작은 것이었다. 정확한 용량은 기억 안나나 큰병 말고 작은병!- 취기가 동한 나머지 뉴트롤즈를 꺼내고는 라이타 불에 앨범비닐을 찢은 다음-취기가 동하니까 비닐도 잘 찢어지지 않았음- 용감하게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아저씨에게로가 그 판을 좀 틀어달라고 요청했다.
아저씨는 별 망설이는 기색없이 판을 걸어주었는데 자리로 되돌아 오던 나는 소리가 너무 작다며 되돌아가 멋대로 뷸륨을 크게 올리고는 다시 자리로 돌아와서는 계속적으로 맥주를 마시면서 뉴트롤즈의 아다지오에 흠벅흠벅 취해 갔던 것이다.
나중에 우리는 투 다이~ 뚜 쓸립!~ 메비 뚜 뜨리이임~ 을 홀이 떠나갈 듯이 합창을 해대며 끝나면 다시 가서 바늘을 옮겨대며 지겹도록 틀어대었던 것이다. 홀에는 우리 말고 멀리 여자손님들이 앉아 있었는데 우리들의 작태가 한심했던지 여섯번째의 합창이 계속 되었을때 가방을 싸고 떠나버리고 우리는 완전히 그 맥주집을 전세 내듯이 뉴트롤즈에 계속적으로 취해만 갔었다.
우리 세명은 결국 흑맥주 36병을 비웠는데 아저씨가 병을 치우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무슨 커다란 전적처럼 테이블 위에 쌓아두었다. 결국 몸을 가누지 못해서 몇번을 깨어버렸지만 우리는 우리가 그토록 많은 술을 마셨다는 것이 여간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시간이 흘러 일몰 시간이 되자 홀에도 손님들이 차곡차곡 차기 시작했고 우리는 휘청 거리는 몸을 이끌고 있는 돈 없는 돈을 긁어모아 - 그런데 그때 술값이 예상외로 별로 비싸지 않았던 것 같다.- 계산을 하고는 그곳에서 나와, 어깨동무를 하고 땅거미가 깔리는 대학로 거리를 계속적으로 뚜 다이! 뚜 쓸립! 메비 뚜 뜨리이임! 을 합창을 해대며 어슬렁거렸다.
결국 그날 아침 늦은 잠에서 깨어난 나는 쓰린 속으로 고생을 하였지만, 치근거리는 머리속에서 각인된 듯이 쉽게 떠나지 않는 아다지오의 갸날프고 시린 선율만은 여전히 감미로울 뿐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좀더 과격한 데스메탈에 심취해갔지만, 난해하고 잘 몰라서 두렵기만 하던 프로그래시브의 세계로 동시에 점차 빠져들게 되었다. 결국, 프로그래시브 하면 마이크 올드필드나 반젤리스, 예스 밖에 모르던 나를 본격적으로 프로그래시브로 이끌었던 것은 뉴트롤즈의 아다지오였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이 해적판을 소중하게 보관을 하고 있다. 기종이 오래되어서 자기 카트리찌를 구할 수 없어 다른 기종의 카트리찌를 꽂아놓은 내 한심한 텐테이블의 바늘 문제인지, 판이 상해서 그런것인지 몰라도 한군데가 튀어서 제대로 돌아가지도 않지만, 나는 이 앨범의 CD 나 깨끗한 음질의 라이센스 LP 를 사지 않고 있다. 그것은 그 이후로 다른 휼륭한 그룹들의 앨범들 사기만으로도 쪼달리는 나의 궁색한 경제적 여건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수백번을 반복해서 들었던 concerto grosso per 1 의 그 모든 선율들이 내 가슴과 머리에 진하게, 그대로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