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nry Cow

Complete Albums: Legend / Unrest / In Praise of Learning / Concerts / Western Culture

이동훈

meddle@nuri.net

이거 쓴게 벌써 2년전이군요...-.- 사실 헨리 카우Henry Cow라고 하면 난해함의 대명사이자 다른 심포닉 팬들에게는 쥐약으로 널리 악명을 떨치고 있다. 그런데 접해보면 의외로 그런 선입견과는 달리 여유롭고 정교하며 역동적인 연주를 구사하는 팀으로 이들의 행적은 후대 여러 밴드들에게 널리 귀감이 되었다.

HENRY COW LegEnd(73, 1st LP)

이하는 앨범에 실린 라이너노트를 거칠게 번역한 것이다. ----------- 68년 혁명에서 패배하고 프랑스에서 신 좌파 운동이 힘을 잃어갈 무렵. 동쪽에서는 프라하의 봄이 무참하게 짓밟히고 서쪽에서는 시카고 경찰이 중산층의 데모를 진압하고 있었다. 음악쪽에서 보면 우드스탁으로 상징되는 싸이키델리즘은 전성기를 맞이하고있었으며 현대 예술에서는 온갖 실험들, 헤프닝, 거리 연극등이 성행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케임브리지를 다니던 프레드 프리스Fred Frith와 팀 호지킨슨Tim Hodgkinson은 다다Dada적인 유머감각을 지닌 헨리 카우를 결성한다. 이들은 처음에 적당한 블루스나 스탠다드 곡들을 연주하였다. 주 레파토리는 B.B. King의 Rock Me Baby나 Skip James의 Hard Time Killing Floor같은 곡들이었다. 이들은 훗날 자신들은 핑크 플로이드와 정반대적인 노래들을 연주하였다고 말한다. 이들은 69년쯤에 자신들이 복잡하고 창조적인 음악에 관심이 간다는 것을 인식하게된다. 그 사이에 Ray Irving Showband에 재적하던 프랭크 시나트라의 광팬인 죤 그리브즈John Greaves가 베이스 주자로 들어오게 된다. 이들은 죤 필John Peel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한다. 72년에 드디어 밴드의 사상적 리더인 크리스 커틀러Chris Cutler가 참여하게 되고 이때부터 본격적인 Henry Cow의 음악이 시작된다고 보는게 맞다.

고광일

vrooom@hitel.net

Legend (1973)

치열한 자기 부정을 통한 창조성의 확보...

이 팀의 치열함은 우선 그들의 음악적 배경으로부터 감지된다. 그들은 대부분이 케임브리지 출신의 수재들이었고 그들이 갖고 있던 전통적인 클래식 훈련과 자유로운 즉흥 연주 사이의 갈등은 곧 밴드 자체의 방향성의 문제로 귀결되었다.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들이 선택한 것은 현대 작곡 기법이나 자유 재즈의 흡수였다. 그리하여 그들의 음악에는 20세기 아방가르드의 여러 기법들이 그대로 차용되어 있으며, 따라서 그들의 음악은 어찌 보면 록이 아닌 현대 음악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그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록 뮤지션이었으며 현대 아방가르드의 성과들을 록이라는 형식 내에서 충실히 구현해 내었다.

데뷰 앨범인 본작에서 이들의 음악적 방법론은 아직 성숙되지 못한 상태였으나 이미 그들만의 독특한 사운드 컬러는 드러나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은 데뷰작이니만큼 완성도 면에서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으나 그들의 참신한 음악적 아이디어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앨범이다. 특히 연주진들의 실력은 정말 놀라울 정도이다.

고광일

vrooom@hitel.net

Unrest (1974)

실험 그 자체에의 몰두...

이들의 실험 정신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난 작품이다. 이들은 기존의 록 음악에 대한 치열한 대결 의식의 표출과 또 이를 위한 효과적 음악적 기제의 끊임없는 탐구였다. 이러한 과정의 부산물인 본작은 자연스럽게 치밀하고 치열하게 짜여진 한 편의 선언문과 같은 것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연유로 본작은 청자의 능동적 해석과 행동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본작은 몸이나 가슴으로 느끼는 것만이 아닌 이성으로 판단하고 사유해야 하는 아주 골치 아픈 작품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음악의 외적 내용(현실 참여)과 음악의 내적 완성도는 그 어느 쪽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 당시 이들의 음악은 후자에 더욱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어찌 들으면 현학적 실험주의로까지 비칠 수 있는 이들의 음악적 성향은 그 한계가 인식되고 이후 슬랩 해피(Slapp Happy)와 만남을 통해 또 다른 시도가 다음 작품 [In Praise Of Learning]에서 시도된.

오찬익

ooci@hitel.net

Unrest에 대한 추가 소감

이듬해에 발표되었던 두번째 작품 Unrest는 그들의 실험정신이 더욱 구체화된 작품으로 연주보다는 실험 자체에 더욱 의미를 둔 것 같은 추상적인 작품이었다. 트랙 1∼4는 Mike Oldfield가 참여한 가운데 1집의 노선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으나, 트랙 5∼10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음악 모험이 시도되고 있다.

스튜디오 작업을 하기 전에 이미 작곡해둔 작품이 부족했던 것도 극단적인 즉흥연주(improvisation)으로 치닫게 된 큰 이유 중 하나였다. 연주만으로는 한계를 느낀 이들은 스튜디오 내의 갖가지 장비들을 동원하여 온갖 해괴한(?) 일들을 저지른다. 그리고 1집에서는 배제되었던 보컬파트를 적극 활용하여 인간의 목소리가 최상의 악기다라는 격언을 충실히 실행에 옮긴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갖가지 실험으로 꾸며져 마치 몬드리안의 추상화들처럼 차가운 느낌을 준다. 현실에 천착하지 않으려는 예술적 용기는 높이 평가하고 싶다.

고광일

vrooom@hitel.net

In Praise of Learning (1975)

Slap Happy와의 만남 : 실천으로...

실질적으로 슬랩 해피(Slapp Happy)의 작품이었던 공동작을 발표한 후 1975년 5월 발표된 본작은 그 커버에서부터 이들의 변화를 짐작할 수 있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양말을 담고 있는 커버이지만 전작들에서의 무채색의 회색 커버에서 핏빛의 검붉은 커버로의 변화는 이들의 노선 변화를 은근히 암시한다.

우선 본작은 슬랩 해피의 보컬리스트였던 다그마르 크라우제(Dagmar Krause)가 참여함으로 해서 전작의 지극히 모호하고 난해했던 정치적 메시지를 좀 더 효율적으로 구체화시킬 수 있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팀 호지킨슨(Tim Hodgikinson)의 곡이 한 곡(Ⅱ), 크리스 커틀러(Chris Cutler)와 프레드 프리쓰(Fred Frith)의 공동 작품이 한 곡(Ⅳ), 헨리 카우와 슬랩 해피의 공동 작품이 세 곡(Ⅲ,Ⅴ,Ⅵ), 그리고 슬랩 해피의 멤버인 안쏘니 무어(Anthony Moore)와 피터 블레그바드(Peter Blegvard)의 공동 작품이 한 곡(Ⅰ)이다.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은 팀의 작품과 크리스-프레드의 작품이다. 이 두 작품은 헨리 카우라는 하나의 공동 작업 집단에서 이제까지 별로 드러나지 않던 노선 상의 괴리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곡이다. (이러한 괴리는 이후 팀의 탈퇴 후 더 웍(The Work) 결성과 크리스와 프레드의 아트 베어즈(Art Bears) 결성을 낳게 된다.)

본작은 헨리 카우에게 있어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해 준 동시에 또 하나의 숙제를 남겨 주었다.

오찬익

ooci@hitel.net

In Praise of Learning - 정치적 실천의 음악

그들의 3번째 작품으로 발표되었던 In Praise of Learning은 slap happy와 협연한 이색적인 작품이었다. 1, 2집을 통해 여러 가지 새로운 음악적 실험을 감행했던 이들은 음악적 실천을 통해 본격적인 그들의 의도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강렬한 빨간색 이미지가 말하듯 이 작품은 좌파적인 성향의 사실주의의 극치라 할 만하다. 추상성보다는 구체성과 역동성 그리고 선동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한편으론 표현주의적 색채마저 느끼게 한다. 그러므로 감상하다보면 쇼스타코비치나 펜데레츠키의 작품이 자연스럽게 연상되더라.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자본주의에 대한 혐오와 사회주의적 실천에 대한 강령이라고 할 수 있을까.

좌파적인 정치성향을 띤 대중 음악이 드물긴 하지만, 그러한 계열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내용과 형식이 잘 부합하는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찬익

ooci@hitel.net

Concerts (1975)

생동감의 현장 : Free Jazz!!!

이 작품은 75년에 발표된 그들의 유일한 라이브 앨범이다. 본시 라이브라는 것이 현장감을 살린 즉흥연주에서 묘미를 찾을 수 있다고들 하는데 이는 헨리카우에게 있어 멍석을 깔아준 것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스튜디오에서 대담한 즉흥연주를 즐겼던 이들은 라이브에서 그 극단을 보여줄 수 있었던 건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닐까.

특히 disc 2에 담긴 곡들 중에서는 마치 스튜디오에서 믹싱한 것 같은 부분들이 들리는데 만약 라이브에서 즉석해서 행해진 것이라면 정말로 놀라울 뿐이다. 이들의 즉흥연주는 오넷 콜맨이나 존 콜트레인 식의 것이 아닌 다분히 유럽적인 느낌을 준다. 스윙하지 않는 재즈랄까?

아무튼 한군데 머무르지 않는 그들의 모습은 필자가 그들의 음악을 아끼는 가장 큰 이유이다.

조영래

cynical@hitel.net

Concerts 앨범에 대한 배경 정보

원래 이 곡들은 Greasy Truckers라는 컴필리에이션 앨범을 위해 녹음된 곡인데, 이 앨범에 참가하기로 한 밴드들은 Dingwalls라는 곳에서 라이브 연주를 가지기로 되어 있었다. Henry Cow는 맨 마지막 차례였으나 - 아마도 이 공연의 메인이었던 듯(?) - 이들의 차례에서 문이 닫히는 바람에 스튜디오에서 그들의 '라이브'를 했어야만 했다고 한다.

오찬익

ooci@hitel.net

Western Culture (1978)

Chamber Rock : 역동성의 회복...

78년 그들의 공식 마지막 작품으로 발표되었던 Western Culture는 초기의 그들의 작품과 꽤 달라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우선 In Praise of Learning을 분기점으로 하여, 스튜디오에서 행해지던 갖가지 시도들은 큰 폭으로 축소되어 있으며, 또 한가지 눈여겨 볼만한 점은 온전히 인스트루멘틀 작품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초기에 행해지던 프리 재즈적인 수법이 축소되고 바르톡, 쇤베르그등 현대음악 작곡자들의 영향이 부각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당시 막 첫 작품을 발표했던 Art Zoyd, Univers Zero등이 추구하던 Chamber Music과 유사한 것으로 프로그레시브록의 새로운 흐름이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 이러한 방법론을 채택하게된 이유는 앨범 타이틀에서도 살짝 엿볼 수 있는 것처럼 서구문명을 비판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들이 선택한 비판의 방식이란 섬뜩함을 몸으로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공장들, 소외된 인간들의 집합체인 냉랭한 도시의 모습으로 대표되는 서구문명의 어두운 측면을 드러내고, 아울러 굳어가는 인간 본래의 역동성의 회복을 부르짖는다.

조영래

cynical@hitel.net

Western Culture - 마지막 앨범의 변화

Henry Cow의 마지막 앨범이 되는 Western Culture는 이전의 Henry Cow의 앨범들과는 조금 차이를 드러낸다. 우선 초창기 Henry Cow를 주도했던 Fred Frith와 Chris Cutler대신 Tim Hodgkins와 Lindsay Cooper가 앨범을 장악해버렸다. Tim Hodgkins는 앞 면의 전곡을 작곡했고, Lindsay Cooper는 선곡된 이 곡을 제외한 뒷면의 전곡을 작곡했다.

사실 이들의 음악은 즉흥성이 강조되는 것이기 때문에 작곡자가 누구냐는 것은 그다지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지만, 본작을 듣다 보면 아무튼 이러한 변화가 이때까지의 Henry Cow의 음악과는 좀 더 다른 미묘한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를테면 보다 '구체화'되었다고나 할까.

아무튼 이 앨범을 끝으로 Henry Cow는 해산해 버린다. 그러나 이들의 음악 여정은 끝나지 않았고, 아직도 Henry Caves는 꾸준히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