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d Zeppelin
영국의 전설적인 하드록/헤비메탈 밴드, 헤비 사운드의 원류를 이룬 밴드 중 하나
정철
zepelin@popsmail.com
Led Zeppelin은 뭐 아트락은 아니지만... 많이들 좋아하시니까요. 전작리뷰를 한번 해봤습니다.
**1969 Led Zeppelin**
다들 헤비메틀의 원류를 이룬 밴드를 들라고하면 레드 제플린, 딥 퍼플 그리고 블랙 사바스를 꼽는다. 맞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이 앨범을 들으면 좀 이상한 생각이 든다. 목가적인 기타리프에 블루지한 분위기가 확 느껴지기 때문일거다.
이러한 사운드는 이 앨범이 녹음되었을 시점과 이들의 뿌리에 원인이 있다. 지미페이지는 야드버즈에 참여한 마지막 기타리스트였다. 알다시피 야드버즈는 에릭 클랩튼, 제프 벡, 키스 렐프(르네상스의 리더) 등이 재적했던 당대의 슈퍼밴드다. 야드버즈는 블루스, 포크적인 성향이 강한 밴드였으며 이는 당대의 주류였다.
야드버즈가 붕괴될즈음 지미 페이지는 뉴 야드버즈라는 이름으로 밴드를 재규합했었다. 68년 도노반의 Hurdy Gurdy Man세션에서 친하게 지냈던 죤 폴 존스, 보컬로 탐냈던 테리 라이드가 추천한 로버트 플랜트 그리고 로버트 플랜트의 옛 동료인 죤 보냄으로 말이다. 레코드사와의 계약 문제로 뉴 야드버즈라는 이름을 쓰면서 한동안 옛날 레퍼토리로 라이브를 했다.
자 이쯤되면 이들 사운드가 왜 이렇게 블루지했고 목가적이었는지 이해가 간다. You Shook Me는 블루스의 거물 윌리 딕슨의 곡이고 I Can't Quit You Baby 또한 그의 곡이다. 재미있는건 윌리 딕슨이라는 인물인데 도어즈, 레드 제플린, 크림, 메가데스를 비롯하여 온갖 수많은 락계의 거물들이 그의 곡을 커버했다. Baby I'm Gonna Leave You는 전래곡이다.
밴드명 Led Zeppelin은 원래는 Lead Zeppelin이었을게다. 납으로 된 체펠린이라...아이러니한 이름이다. 그런데 발음이 [led]니까 그냥 a를 빼고 밴드명으로 한듯하다. 체펠린은 독일이 1차대전때 써먹었던 수소비행선 이름이다. 체펠린 경(Ferdinand Graf von Zeppelin, 1838.7.8~1917.3.8)이 부력을 전혀 이용하지않는 비행선으로 고안해내었다. 독일의 기술력을 과시한 역작이며 당시 폭격용으로 전세계를 두려움에 떨게했다. 가볍지만 워낙 잘 터지는 수소를 사용한 것이라 항상 폭발위험을 안고있었다. 37년 5월 6일에 미국 뉴 저지에서 비행선 힌덴부르크의 폭발사고로 36명이 사망한 이후 이런 형태의 비행선 개발은 전면 중단되었다. 재킷도 체펠린이 폭발하는 멋진 장면이다.
보통 크림이 밴드의 형태를 기타, 드럼, 베이스(그리고 보컬 겸임)의 형태로 규정했다고들 하는데 내 생각에는 레드 제플린이 가장 명확하게 밴드의 형태를 규정했다. 기타[+뮤직 디렉터], 베이스[+오케스트레이션, 키보드], 드럼[+퍼커션], 보컬[+얼굴마담]이라는 형태야말로 가장 집약적인 밴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않은가?
이 앨범은 69년 1월에 발매되어 미국내 챠트 10위 안에 올라가면서 성공적인 데뷔를 마쳤다. 동시에 바로 미국투어를 다녔다. 레드 제플린은 진정한 라이브 밴드였으며 이들의 부틀렉 음원은 수백장을 헤아린다.
블루스의 영향력과 하드락의 초기 모습을 보여준 이 음반은 앞으로 헤비사운드가 어떻게 변해갈 것인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였다. 그것뿐이 아니다. 이 음반은 진정한 클래식으로서의 자질을 갖추고 있다. 지금들어도 충분히 현재적인 사운드이고 곡 구성이 전혀 고리타분하지 않다.
위대했던 밴드들의 데뷔작이 쏟아졌던 69년 초에 발매된 이 음반은 전설의 시작으로 전혀 유감없는 역작이다.
**1969 II**
데뷔음반을 발표함과 동시에 미국투어를 돌았던 이들은 투어를 돌면서 계속 곡을 작곡해 69년이 채 가기도 전에 이 두번째 앨범을 발표한다. 이미 스테이지에서 작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곧 챠트 정상에 올라가 7주간이나 내려오지 않았다.
데뷔작의 재킷은 체펠린의 폭발모습을 거칠게 잡아서 분위기를 연출했는데 이 앨범의 재킷은 체펠린의 실루앳 앞에서 멤버들이 포즈를 취한 모습이다. 비틀즈의 Sgt.Pepper(67)재킷에서 영향받은듯 하다.
첫곡 Whole Lotta Love의 베이스 인트로는 이들이 한번 뭔가를 보여줄 것 같다는 분위기를 꽉 잡는다. 데뷔작에서 Dazed and Confused나 Communication Breakdown의 거친 사운드를 접한 사람이라면 이미 흥분할 준비가 되어있다. 이 인트로는 폭발할 준비하라는 죤 폴 존스의 친절한 안내다.
사운드상으로 볼 때 이 곡의 등장은 헤비사운드의 정립을 의미한다. 죤 보냄의 강렬한 [깡통..^^]드럼과 지미 페이지의 직선적이면서 기교적인 기타리프는 후대 헤비사운드를 구사하는 밴드들에게는 뺄 수 없는 요소가 되었다. 로버트 플랜트의 포효하는 보컬은 강렬하고 또한 연극적인 요소가 매우 강했는데 후대의 밴드들은 이 양면성중의 일부 혹은 양쪽 다를 차용하였다.
물론 다른 곡들에는 여전히 블루스적인 필링이 강하게 들어있다. 블루스적인 리프가 아닌 부분에서조차 지미 페이지의 연주는 블루지하다.
레드 제플린의 연주는 마냥 헤비 사운드라고 말하기는 미안한 뭔가가 있다. 이는 딥 퍼플이나 블랙 사바스에게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성향이다. 딥 퍼플 1기는 누가뭐래도 명백한 브리티쉬 락/아트락에 속하고 블랙 사바스도 데뷔앨범을 아트락의 명가인 Vertigo에서 발매하였다. 이것은 시대적인 영향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당시는 테크닉이 원숙해지면서 그 테크닉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것을 고민하는 시기였던 것이다. 그래서 곡들이 지금보다도 오히려 현저하게 드라마틱한 부분이 많고 구성이 복잡하였다.
사실 이들의 후배들은 점차 하드락이라는 장르를 양식화시키면서 복잡한 구성같은 것은 조금씩 빼고 현란한 기교를 구사하거나 쇼를 연출하였다. 소박함이 사라지고 기교만이 남게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왜 요즘 밴드들보다 이 때의 연주가 더 강렬하게 들릴까라는 의문이 든다. 내 생각에 이들은 밴드가 가진 속성을 가장 간결하게 보여준 밴드인데 이들의 연주는 각자의 위치에서 사운드가 모두 튄다. 요즘에는 사운드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모르지만 너무 매끄럽고 너무 빽빽하다. 이들의 음악을 가만히 들어보면 베이스가 튀는 부분에서는 드럼과 기타가 살짝살짝 받쳐주고 드럼이 튀는 부분에서는 기타가 조용히 있고 뭐 그렇다. 곡 전체가 각자의 솔로연주와 밴드연주를 골고루 섞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사운드의 여백이 오히려 레드 제플린이라는 밴드를 헤비사운드의 대명사처럼 만들었다는 사실은 무척 재미있다. 말하자면 가지치기다.
어떻게 듣던 상관은 없지만 레드 제플린이라는 밴드는 단순한 밴드가 아니라는 사실만 기억하자. 지미 페이지는 60년대 중후반을 풍미했던 세션 기타리스트 출신이고 그가 죤 폴 존스를 만난 것은 도노반의 음반을 만들던 기간이었다는 것을.
이 음반은 데뷔작을 만들고 투어를 하면서 좀 더 직선적으로 다가가지만 뿌리를 잃지는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음반이다. 이후 헤비사운드를 계승했던 후배들, 예를들면 아이언 메이든이나 주다스 프리스트같은 나름대로 '위대한' 친구들을 보면 음악이 너무나 똑같은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레드 제플린은 블루스, 포크[왠 포크냐고? 그런 요소도 많다]뿐 아니라 점차 정교해져 Physical Graffitti같은 [우긴다면] 프로그레시브 락까지 계속 지평을 넓혀갔다.
아마도 비틀즈와 지미 헨드릭스를 제외하면 가장 강렬했을 레드 제플린의 행보를 조금 더 들여다보도록 하자. 다음에...^^
**1970 III**
레드 제플린은 자존심이 아주 강한 밴드였다. 처음에 이들은 음반 출반과 동시에 전미 라이브를 가졌다. 이는 미국이라는 거대시장속에 깊숙히 파고들기 위한 전략이었고 이들은 매우 큰 인기를 얻게되어 나중에는 가는 곳마다 만원세례를 이루었다. 이후 이들은 공연에 있어서는 매우 고까운 자세를 취하고 공연료도 엄청 비싸게 받았다고 하는데 이것은 자신감의 표현이었단다.
기본적으로 이들은 TV에 출연한 적이 별로 없다. TV에서는 자기네가 뿜어대는 격렬한 사운드를 표현할 수 없기때문이었다. 지미 페이지는 약간 결벽증세가 있던 친구같다.
이들은 제대로 된 싱글을 내본적이 없다. 음반사에서 발매했을지언정. 하지만 이 앨범에서는 Immagrant Song을 싱글로 내었는데 이것은 지금도 수집가들이 눈빠지게 찾은 아이템이다. 이들의 B사이드 곡은 단 한곡 있는데 그것이 바로 Hey Hey What Can I Do였다. 이들은 음반에서 한곡 뽑아 싱글곡을 내는 일을 아티스트가 할 짓이 못되는 치사한 행동이라고 여겼다 한다.
바로 요 앨범에서부터 이들은 재킷에도 신경을 좀 쓰게된다. 1집은 전면 사진이 매우 귀티나게 찍혔었지만 2집은 솔직히 재킷이 꿀꿀했던게 사실이다. 하지만 3집 이후로 이들은 꿀꿀한 재킷을 만든 적이 없다. 3집 재킷은 당시 아트락 밴드들이 많이 만들던 변형 커버로 더블재킷 앞쪽에 LP사이즈의 종이를 넣고 구명을 뚫어두었다. 그래서 뱅글뱅글 돌리면 구멍에 보이는 그림이 바뀌는 아주 쿨한 재킷이다. 전체적으로 키취적인 이미지들을 꼴라주해놓아 하나의 팝아트처럼 보인다.
첫곡 Immagrant Song은 로버트 플랜트의 포효가 아주 그만인 곡이며 여기까지만 들어도 사실 사람들은 역시 레드 제플린 이라고 할 것이다. 그 다음곡 Friends의 분위기가 좀 요상하긴 해도 Since I've been Loving You를 비롯하여 나머지 곡들이 터져주기때문에 흠 레드 제플린의 3집은 2집까지의 스타일에 새로운 양념을 친 음반이로군 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뒷면에서는 모든 곡이 목장에서 띵가띵가대는 브리티쉬 포크락이 흘러나오는데 레드 제플린 = 하드락이라고 생각하던 휀들은 배신감을 느끼기 충분하다.
아마 이런 배신감은 훗날 메틀리카가 지적인 스래쉬 메틀을 포기하고 Metallica[aka Black Album]을 발표했을때와 비슷할 것이다. 내가 중3때 발매된 그 앨범을 듣고 난 그들을 변절이라고 매도했었지만 고등학교 어느날부터 나는 그 앨범을 꽤 즐겨듣기 시작했으며 지금은 90년대를 대표하는 음반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레드 제플린은 음악적 뿌리가 상당히 복잡한 밴드이고 당대의 주류는 하드락보다는 블루스와 포크, 싸이키델릭, 로큰롤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해준다면 사실 이건 어쩌면 당연한 귀결 중 하나이다. 지미 페이지와 존 폴 존스는 도노반의 Hurdy Gurdy Man뿐만 아니라 Sunshine Superman까지 함께 녹음했던 포크 키드이기도 했다.
지미 페이지는 닐 영이나 스테판 스틸스가 가진 포크적 감수성을 무척 부러워했다고 알려져있으며 당시에는 버팔로 스프링필드를 열심히 들었다고 한다. 마지막곡 Hats Off to (Roy) Harper는 이상하게도 연주자들이 그렇게 좋아했던 기인 포크싱어 로이 하퍼에게 바치는 곡이다.
레드 제플린의 포크락은 정중동이라고 할까 로버트 플랜트의 또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조만간 폭발해줄것 같은 이녀석이 참고 조용히, 하지만 여전히 드라마틱하게 노래를 부르는 것은 뭐랄까 만화책을 볼 때 종종 나오는 외전을 읽는 기분이랄까.
또 한가지. 이놈들은 해체할 때까지 결코 블루스를 놓아본 적이 없다. Since I've been Loving You는 지미 페이지의 늘어지는 솔로가 다른 멤버들의 연주에 멋들어지게 감기는 궁극의 블루스락이다. 여기서 놓치면 미안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죤 폴 존스가 연주하는 오르간이다. 지미 페이지가 음악 감독이었다면 죤 폴 존스는 사운드 메이커였다.
레드 제플린의 이색작인 본작은 괴물들은 뭘해도 잘한다라는 좀 샘나는 말이 나오도록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는 좋은 음반이다. 여튼 이색작은 이색작이고 이들의 다음 음반은 이전 음악 뿐 아니라 레드 제플린의 모든 것이 담긴 음반 중 하나인 4집 nothing[aka IV or Zoso]이다.
**1971 nothing[aka Zoso or IV]**
사실 사람들은 이 음반에 대해 말할 때 일단 한번 접고 들어간다. Stairway to Heaven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궁극의 명반취급을 하고 나머지 곡들은 있는지 없는지 이 곡에다 헌사를 바치기에 급급하다.
아 물론 좋은 음반이긴 하다. 하지만 내 생각엔 이 음반이 다른 음반들에 비해 더 뛰어난 것은 아니다. 이들의 음반은 전체적으로 완성도도 고르고 하드락, 포크, 블루스, 락큰롤이 적절히 배합되어있는 지미 페이지라는 제작자에 의해 '잘' 만들어진 상품이다. 내 생각에 이들의 예술가적 기질이 가장 잘 드러난 음반은 Physical Graffitti이다.
자 먼저 이렇게 긴장을 빼고 이 4집 nothing을 들어보면 이놈들이 전작에이어 점점 스스로를 아티스트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생각이 팍팍 든다.
재킷에 아무 글씨도 쓰지 않고 사람들에게 판을 사가라고 말하는, 타이틀도 안붙이고 그저 지들이 도안한 문자를 가지고 앨범타이틀이라고 주장하는 이 오만함은 아무나 부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객기라고나 할까...^^
고풍스럽게 디자인된 더블재킷에 안쪽에는 Stairway to Heaven가사 하나만 덜렁 들어있는 이 음반은 이미 분위기부터 다르다.
턴테이블에 판을 걸면 연주없이 터지는 로버트 플랜트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어째 사운드가 좀 빈티가 난다. 첫곡 Black Dog은 전체적으로 여기저기 사운드가 비어있다. 다음곡 Rock and Roll에서는 한바탕 제플린 스타일의 하드락이 터지지만 그 다음곡 The Battle of Evermore에서는 켈틱 분위기의 포크락이 흐른다. 이전까지의 제플린 사운드와는 영 다르다. 그리고 나서 잔잔하게 깔리는 것은 Stairway to Heaven의 전주. 이 앨범 A면은, 특히 3, 4번 곡의 흐름은 완전히 Stairway to Heaven이라는 클라이막스를 위해 바쳐져있다. 내 생각에 앨범이 예술성을 획득하려면 컨셉트 음반이거나 음반 자체의 흐름이 있어야 하는데 제플린은 이 음반에서 바로 일관된 흐름을 얻어내기 위한 구성을 취한 것이다.
이 앨범에서 느껴지는 분위기, 특히 The Battle of Evermore에서 느껴지는 켈틱 분위기나 Stairway to Heaven의 비장미, 아트워크에서 느껴지는 고풍스러움이나 어두운 이미지에는 전체적으로 통일성이 부여되어있다. 많은 이들이 이 앨범에서 Stairway to Heaven하나를 거론하는것도 그 한곡이 전체를 대변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음반 전체를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은 70년대의 산물이며 대부분의 위대한 밴드는 이런 시도를 하였고 일부는 성공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특정 레이블 혹은 마이너밴드들에게로도 이어졌으며 이러한 문화의 만연은 이 때의 음악에 아트락이라는 명칭을 부여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탐미주의는 예술 융성기 대부분에 나타나는 경향이고 조금있으면 이런 경향에 역행하는 경향이 또 나오게 마련이다.
이들은 이 음반을 만들 때 소규모 라이브 위주로 공연을 했다고 한다. 음악적 영감을 얻기위한 상호작용의 장소로 클럽을 선택한 것이다. 당연히 공연료도 클럽에 준해서 싸게 매겼고. 그로인해 그 클럽들은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종종 폭동이 일어났다고 하니 이들의 인기가 어떠했는지 알 수 있다.
폭발적인 대중성과 높은 음악성이라는 것을 모두 획득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것이라 락계에서는 비틀즈, 레드 제플린, 롤링 스톤즈, U2정도 외에는 생각이 잘 안난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나마 서태지 정도? ^^
뒷면에서도 앞면과 같은 분위기가 나타나는데 Misty Mountain Hop에서는 전형적인 제플린식 하드락을 하다가 Four Sticks에서는 기존에 들어볼 수 없었던 리듬의 드럼 연주가 독특한 분위기를 만든다. 지미 페이지의 대단한 점 중 하나는 어쿠스틱 기타를 가지고도 하드락 분위기를 잘 만든다는 것이다. 청자가 인식 못해도 자연스럽게 연주스타일을 바꿔가며 앨범을 유려하게 끌고나간다는 것은 그가 매우 대단한 프로듀서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히트곡 Going to California에서는 Stairway to Heaven처럼 야시꼴랑한 포크락을 들려주는데 이 음반이 나올 때 지미 페이지는 신비주의에, 로버트 플랜트는 켈틱 문화에 빠져있었다고 한다. 지미 페이지는 오지 오스본의 송가 Mr.Crowley의 주인공 Alexis Crowley가 살던 별장을 구입에 스튜디오로 쓰는 둥 돈벌어가지고 자신의 기이한 취미에 쏟아붓는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마지막곡 When the Levee Breaks역시 이 음반이 일관된 흐름을 가지고 있다는 겻을 보여주는데. Going Down~ Going Down Now~ 이렇게 로버트 플랜트가 끌어가다가 지미 페이지의 자기자기장~ 하는 끝마무리로 앨범을 끝낸다. 혹시 해보셨는지 모르겠는데 식용유를 붓다가 손목에 스냅을 주면 탁 끊긴다. 이 기타솔로는 바로 그 느낌으로 앨범을 끝낸다...끝나고 들려오는 소리는 판돌아가는 소리와 턴테이블 헤드가 끝까지 가서 툭~툭~하며 들어달라고 하는 소리 뿐.
솔직히 듣고나면 좀 허전한 감이 있다. 앨범 하나를 다 들었는데 다 듣고나면 한 곡을 들은 느낌이다. 앨범 구성이 너무 매끄럽고 앨범 자체가 좀 양식화되어있어 그런 느낌을 줄 것이다. 곡 단위보다는 앨범의 어떤 위치에 넣을 것인가를 고려한 곡들이 들어있는 앨범이다. 하지만 멋진 앨범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1973 Houses of the Holy**
전작에서 이미 음반 하나를 일관성 뚜렷한 예술작품으로 만든 이들은 전작과 유사한 재킷의 음반을 하나 더 낸다. 역시 재킷에 아무 글씨도 써있지 않고 거친 질감을 가진 더블재킷으로 이루어져있다. 4집때 사람들이 겪은 혼란만은 피하고 싶었는지 하얀 띠에 밴드명과 앨범 타이틀을 써서 재킷에 감아두었다. 당시 밴드들에게 멋진 재킷을 선사하던 Hipgnosis의 작품으로 이후 대부분의 음반 재킷을 힙노시스가 담당한 것으로 보아 아마 이들이 재킷을 만든 것은 4집부터라고 생각된다.
어쨌거나 소녀들의 옷을 훌렁 벗겨서 돌덩이 위에 올려놓았으니 조선의 꼰대들이 곱게 놔둘리가 없다. 처음에 이 음반이 국내에 발매되었을 때는 안쪽 재킷이 바깥에 인쇄되어 나왔다. 하지만 안쪽 재킷에는 왠 녀석이 소녀 하나를 들고 마치 제물로 바치려는 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었는데 이것도 인쇄되어 나왔을까? 당연히 이건 지우고 나왔다...-.-
전작들과는 달리 음반이 나오기까지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고 음반에 타이틀이 붙어서 나오는 등 여러가지 변화가 있었다.
사운드상으로도 변화가 많은데 첫곡 The Song Remains the Same에서 로버트 플랜트의 보컬에 걸린 이펙트는 듣는이로 하여금 어리둥절하게 만들기 충분하다. 나는 처음 이 곡을 들었을 때 턴테이블의 속도에 문제가 있는줄 알았다. 그래서 호...턴테이블이 빨리 돌아도 멋지게 들리는 곡이로군 하며 이 곡이 끝난 다음에 턴테이블 속도를 제대로 돌려놓을 생각을 하고있었으니깐...-.- 직선적인 사운드가 불을 뿜는 멋진 곡이다.
제플린의 앨범을 열씸히 들어오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하드락적인 곡 뒤에는 거의 부드러운 곡들이 흘러나온다. 많은 이들이 좋아하시는 The Rain Song이 그런 곡이다. 이들의 가사도 꽤나 다양한 세계를 담고 있는데 그 안에는 이런 사랑노래도 많다. 하지만 제일 웃기는 곡들은 마초적인 느낌이 가득한 곡들인데 3집의 Immagrant Song이나 8집의 Achilles' Last Stand같은 곡들에는 역경을 헤치고 나아가는 남자들의 모습이 당당하게 묘사되어있다. 상당히 코믹하다. The Rain Song에서는 죤 폴 존스의 멜로트론 연주도 담겨있다. 앞서 여러번 말했지만 죤 폴 존스는 레드 제플린의 나머지 사운드 메이커다.
다음곡 Over the Hills and Far Away는 발라드 분위기와 하드락적인 분위기가 묘하게 섞인 곡인데 이들은 이런 곡도 잘 만든다. 아무리 들어봐도 레드 제플린은 하드락 밴드가 아닌것 같다...^^
The Crunge에서는 이놈들이 결국 James Brown까지 건드리고 말았다. 아주 훵키한 곡인데 로버트 플랜트는 능청스럽게 목소리를 바꾸면서 잘도 부른다. 제임스 브라운은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아티스트지만 훵크의 괴물로 지미 헨드릭스에게 섹시 다이나마이트 모션(?)을 전수한(?) 정통 훵키 소울 락커다. 이런 느끼한 아티스트의 곡을 바로 자기들 것으로 소화하며 A면이 끝난다.
Dancing Days라는 곡에서 댄스뮤직까지 했다면 좋았겠지만 다행인지 아닌지 댄스는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레드 제플린의 곡들이 대개 어깨춤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한 훵키한 곡들이라 꽤 흥겹다. 이때였다면 이런 곡을 들으며 춤을 춰도 되었을 것이다. 춤추기 더 좋은 곡은 다음곡인 D'yer Mak'er인데 여기서 드디어 이놈들이 레게 리듬까지 손대고있다. 역시 능청스럽게 소화한다.
하지만 신비주의적인 신디사이저 연주를 깔고 No Quarter를 시작하는 이들은 우리가 언제 훵크와 레게를 했어?라고하며 진지하게 나간다. 왜 이래도 어색하지 않을까. 마지막곡 The Ocean은 훗날 비스티 보이즈라는 개구쟁이들의 리믹스 소재로도 활약한 곡으로 이들의 왠지 어색한 코러스가 너무 잘 어울리는 신나는 곡이다.
도대체 이들에게 침체기라는 것은 없는지...사실 4집 이후 발매하는 음반은 2년생 징크스sophomore jinx가 나타나가 충분한 시점이었다. 발매 시기가 예전보다 길었고[장고끝에 악수라고 밴드들의 휴지기가 길면 다음에 똥판을 내는 경우가 많다] 워낙에 걸출하고 완결성이 뛰어난 음반을 낸 다음이라 부담이 갔을테니까.
이들의 5, 6집은 변화를 시도한 앨범들이다. 5집에서 맛을 보여준 이들은 6집 Physical Graffitti에서 우리가 아티스트로서 보여줄 것은 4집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듯 또다른 형태의 마스터피스를 만들어내었다. 물론 이 음반을 워밍업정도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매력적이지만. 생각해보면 3, 4집 또한 변화의 시기였는데...이들은 정체된 적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1975 Physical Graffiti**
보통 음반 크레딧에는 많은 이름이 담겨나온다. 프로듀서, 엔지니어, 디자인 등등. 하지만 그중에서 기억되는 이름은 프로듀서가 고작이고 운좋으면 엔지니어가 걸리는 경우도 있다. 그 운좋은 엔지니어에는 ELP의 노래 제목에까지 실렸던 Eddie Offord나 후에 아티스트로도 변신하는 Alan Parsons[역시 Pink Floyd의 곡 제목으로 나옴]정도가 있다.
제플린의 음반에는 Excutive Producer라는 자리에 Peter Grant라는 인물이 있는데 이 아저씨는 한번쯤 언급해줄만한 사람이다.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Excutive Producer라는 말은 제작책임이라는 말로 해석이 가능할듯 하다. 음반 프로듀서가 아니라 음반 제작에 관한 것들을 지휘했다는 말일 것이다.
이 사람은 제플린의 전속매니저로 제플린이 영국을 공략하는 대신 미국투어를 감행해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얻게한 장본인이다. 그리고 그는 지속적으로 제플린 멤버들이 음악만 전념할 수 있도록 많은 부분을 조절해왔으며 이 앨범을 발매한 자신들의 레이블 Swan Song을 설립하였다.
다시한번 2년만에 발매된 이 음반은 제플린의 총결산적인 의미를 가진다. 이들의 유일한 더블앨범이며 신곡 반 재고품 반으로 구성하였는데 음반의 길이 자체뿐 아니라 다양한 구성은 마치 뷔페에서 뭘 먹어야 좋을지 모르는 느낌을 받게하며 Beatles의 셀프타이틀 화이트앨범과 비슷하다는 인상을 준다.
첫장은 직선적이지만 훨씬 훵키해진 제플린 스타일의 곡들과 대곡지향적인 다이나믹한 곡들이 배치되어있는데 각 사이드는 10분대에 가까운 곡들로 마치고 있다. CD로 들을 때는 반드시 3곡씩 끊어가며 듣길 권한다. 이 앨범은 그렇게 구성되어있다.
첫곡 Custard Pie는 제플린의 앨범 첫곡들이 으레 그렇듯 시원시원하게 시작한다. 우리에게 꿀꿀함은 없다!라고 말하는듯 하다. The Rover의 기타연주에서 지미 페이지와 죤 폴 존스는 연주 자체를 즐기는 것 같다. 두 사람이 엉덩이를 실룩거리면서 연주할거라는 느낌이 드는건 그만큼 이 곡이 훵키하기 때문일 것이다.
신나는 곡 다음에는 무거운 곡이 나오고 무거운 곡이 나온 다음에는 사이드가 끝나거나 다시 즐거운 곡이 나온다. 제플린의 곡 배치는 대개 이러한데 In My Time of Dying은 무거워야 하는 시점의 곡이다. 아마도 이들의 곡 중에 가장 길 듯한 11분이 넘는 시간동안 블루지한 톤으로 시작해서 하고싶은 연주를 다 뿜어낸 다음에 다시 첫 주제로 돌아가고 장난스럽게 사이드를 끝낸다. 밥 딜런의 곡을 기본으로 삼은 곡이다.
사실 유명하지 않은 곡이긴 하지만 Houses of the Holy라는 곡이 듣고싶은 사람은 Houses of the Holy 앨범을 사면 안된다. 그 곡은 이 앨범에 있으니깐. 아마 이 곡은 재고품인 모양이다. Trampled under Foot은 The Rover처럼 훵키함이 강조된 곡으로 첫장이 가진 훵키한 하드락이라는 성격을 그대로 드러낸다.
Kashmir는 이 음반에서 가장 독특한 곡 중 하나로 제플린은 뭘 해도 능청스럽게 잘한다는 느낌을 준다. 한 주제를 지속적으로 반복하는데 그 유명한 현악라인은 나중에 퍼프 대디Puff Daddy라는 녀석이 고질라 사운드트랙에서 샘플링한 바 있다.
다음장은 분위기 꽉 잡는 In the Light으로 시작한다. 처음에 나오는 연주는 고래 울음소리를 표현한거라는데...푸푸. Bron-Yr-Aur는 3집 시절을 연상시키는 어쿠스틱 송인데 이러한 곡들이 어색하지 않게 앨범에 섞여있기때문에 다채롭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Down by the Sea Side는 Rolling Stones를 연상시키는 영국 양아치 발라드라고나 할까. 로버트 플랜트는 모창에도 상당히 능한데 변화가 어려울것 같은 톤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 앨범에서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보컬스타일을 들려주었으며 여기서는 믹 재거를 능가하는 양아치 목소리(^^)를 내었다. Ten Years Gone같은 곡이 제플린 스타일의 발라드다.
마지막 사이드는 Night Flight으로 시작하는데 초기 헤비 블루스적인 느낌이 강한 곡이다. 이녀석들은 끝까지 블루스를 물고들어간다. 비틀즈나 킹 크림즌같은 밴드는 정말 블루스적인 냄새가 안나는데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롤링 스톤즈 같은 밴드는 정말 블루지한 냄새가 풀풀 난다. 이런 대형 밴드들의 성향을 좀 더 뒤적여보면 락의 원류에 대해 더 잘 알수있지 않을까?
The Wanton Song에서 다시한번 초기의 하드락을 구사한 뒤 Boogie with Stu에서 듣는 이를 홀랑 깨게 만든다. La Bamaba를 불렀던 Ritchie Valens의 곡을 차용한 느끼 뺀질이 락큰롤이라고 하겠다. 이녀석들은 안하던 짓을 해도 참 잘한다. 이들의 부틀랙 라이브가 그렇게 많은 것은 이들이 죽어라 라이브를 하면서 돌아다녔기도 하지만 가끔 이런 곡들을 연주하면서 휀들을 즐겁게해주었기 때문일게다.
Black Country Woman은 맛깔나는 어쿠스틱 기타와 장난기어린 플랜트의 보컬이 아주 잘 어울리는 곡으로 베이스와 일렉기타가 빠져서 산뜻한 맛이 느껴진다. 대신 그 자리에는 하모니카가 들어가있다.
이들은 앨범을 쉽게 시작하지 않듯 쉽게 끝내지도 않는다. Sick Again은 역시 이 음반의 정수는 첫장의 곡들처럼 하드락이었어라는 느낌을 다시 주는 마지막 곡이다. 휙 끝나는 것이 좀 아쉽다.
이들의 라이브는 점차 요란해졌다고 하는데 마치 Pink Floyd가 그랬든 온갖 레이저 쇼에다가 영화를 상영하는 등 대규모로 거행되었다고 한다. 죤 보냄의 위장병이 동하고 지미 페이지가 손가락을 다치는 등 고생을 했다고 한다.
이 앨범의 재킷 또한 유명한데 아파트 창에 구멍이 뚫려있고 음반을 집어넣었다 뺐다가 하면 다른 그림이나 커튼이 보이게 되어있다. 각각의 창을 들여다보면 온갖 요지경이 들어있는데 야사시한 사진도 좀 있으니 잘 구경해보시라. 이 앨범의 다양성과 키취적인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고있는 재킷이라 하겠다. 정말 좋은 음반이라면 재킷과 내용물이 일관성을 가져야한다. 그리고 진짜 좋은 음반들은 재킷과 내용물의 일관성이 뚜렷한 편이다. 당장대보라고 해도 3-40장은 댈 수 있다! 대는데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사실 나는 이 음반을 들을때 곡단위의 구성을 생각하며 듣기보다는 책을 읽으며 고개나 까딱까딱하다가 판 돌리고 또 까딱까딱하다가 판을 돌리는 식으로 듣는다. 정말 위대한 아티스트들의 특징은 후진 곡은 음반에 넣지 않는다는 점이다. 음반 구성에 문제가 있는 곡들도 넣지 않는다. 그래서 듣다보면 어느새 헤드가 끝까지 들어가 툭 소리를 내며 올라오는 것이다.
우리나라 음반들은 대개 한두곡의 힛곡들과 나머지 잡다한 곡들[filler]로 구성되어있다. 이는 서태지나 신해철같은 소위 아티스트로 불리는 친구들도 예외는 아니며 메이저 음악 씬과는 동떨어진 활동을 한 정태춘이나 한대수같은 포크 싱어들 정도가 그나마 필러를 안쓰는 축에 속한다. 국내 음반들에도 명반은 있지만 그 명반을 낸 아티스트들조차도 다른 음반에서는 이 필러 사용의 혐의를 벗기 어려운 것이다. 뭐 콩깍지 씌이면 필러고 뭐고 다 좋게 들리긴 한다...^^;
재능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기본적인 것은 자세[attitude]다. 내가 먹을거대주는 입장이 아니기때문에 강하게 요구할 수는 없겠지만 음악을 욜씸히듣는 청자로서는 충분히 질타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음반/음악은 작가[artist]의 태도를 반영하며 정말 좋은 음반/음악은 듣는 이를 끊임없이 감동시킨다. 명반들은 명반이 된 이유가 있다. 좋은 음반으로는 부족하다. 명반을 듣고싶다. 특히 한국어로 된 명반을 듣고싶다.
뭐 요즘에 나오는 락음악은 영미권 어디를봐도 그렇게 영혼을 썩 울려주지는 못하고 오히려 종종 우리나라 락음악이 내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일이 있는데 무척이나 바람직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변하는건지 우리나라 락씬이 좋아지는건지는 몰라도.
어쨌거나 제플린은 단 한장의 똥판도 만들지 않은 진정한 아티스트다. 사실 다음 음반들 부터는 힘이 좀 빠지긴 해도 말이다.
**1976 Presence**
이들의 음악여정중에 최초의 정체가 나타났다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이 시점일 것이다. 멤버들 말로는 그들의 가장 강렬한 순간을 담은 음반이라고 하지만 내 생각에는 구성상의 묘미에서 실패한 이들의 첫번째 앨범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76년 4월 이들은 새 앨범 Presence를 발매했고 이는 발매 동시에 영미 양안에서 챠트 1위로 데뷔를 했다. 1년만에 나온 앨범이지만 이미 레코딩이 일찌감치 끝나있었고 재킷 디자인이 늦어져서 발매가 늦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악재가 겹쳤었는데 이들은 75년에 한동안 소득법 위반으로 영국내의 입국이 거부되었었고 그래서 다들 휴가를 즐겼다고 한다. 영국 음악계는 뮤지션들에게서 높은 세금을 걷어가는 것으로 악명높으며 음악산업에서의 수출은 영국경제에서 매우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뭐 그러니까 판을 많이 팔아치운 이들에게 작위까지 수여하겠지...-.- 그래서 많은 영국 뮤지션들은 돈을 뜯기느니 차라리 활동무대를 미국으로 잡고 영국에는 잘 안오기도 한다. U2는 아일랜드 경제에서 거의 대기업수준의 비중을 차지한다는 말도 있다.
게다가 휴가기간동안 로버트 플랜트가 가족과 함께 사고를 당해 혼수상태까지 가고 설상가상으로 스튜디오에서 플랜트가 넘어져 입원까지 했으니 재수가 어지간히 없었던 해라고밖에 할 수 없겠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멜로디 메이커 인기투표에서 7개부문을 쓸었으니 여전히 인기는 절정이었다.
재킷은 상당히 일관성을 가진 것이다. 앨범 타이틀 '존재'처럼 재킷의 사진들에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비틀린 입상이 하나 서있다. 이것들은 어제 어디나 존재하는 것에대한 상징일 것이다. 사실 가사와는 별로 상관이 없는 이미지메이킹이다. Hipgnosis의 재킷은 정말 타 작가들의 추종을 불허하는 구석이 있다.
첫곡은 Achilles Last Stand인데 이들의 가장 파워풀한 곡 중 하나임에 분명하다. 마치 1, 2집 시절의 음악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하는 듯 10여분동안 후려갈긴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 별로 임팩트를 주지 못하는 곡들이 뒤이어 나온다. 뭐 이미 나는 레드젭의 음악에 뻑간상태기 때문에 이 앨범도 자주 귀에 걸고다니지만 솔직히 다른 앨범에비해 앨범에 응집력이 결여되었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
뒷면으로 넘어가도 이런 상황은 계속된다. 훵키한 두번째곡 Candy Store Rock도 예전의 감칠맛까지는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며 블루지한 사랑노래 Tea for One이 앨범을 끝맺고있지만 강렬한 여운을 남기지는 못하고있는 것이다.
자,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이들은 지금까지 승승장구하며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성공일로를 달려왔다. 이들은 다양한 음악적 뿌리 아래서 여러가지 혼합변종을 만들어내는데도 어느정도 성공했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 변화의 폭이 그리 넓은 것이 아니었다는데 있다.
Beatles와 Pink Floyd, King Crimson을 보자. King Crimson은 분명하게 시기를 구분할 수 있으며 각 시기를 넘어가면서 그전까지와는 단절에 가까운 음악적 시도를 했다. Pink Floyd는 Roger Waters가 남아있던 83년까지 유사품을 거의 만들지 않았다. Beatles의 모든 앨범은 당대의 트렌드를 이끌어갔던, 음반 발매 자체가 신기원이었던 그런 밴드였고.
그런데 제플린의 음악적인 변화는 분명 다양했지만 그 폭이 너무 좁았다. 이들의 음반중에 분명 이색작은 존재하지만 전혀 다른 스타일은 아직까지 없었다. 즉 약발이 다했다고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분명 인기밴드이지만 사람들이 이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죽이는 하드락과 블루지한 곡 이 두종류밖에는 없다. 그리고 가끔 감칠맛 나는 곡들도.
시간이 필요했다. 이제 전환을 모색해야할 시기가 다가온 것이다.
**1979 In Through the Out Door**
77년부터 다시 미국투어를 돌기시작한 이들이지만 불운은 계속되었다. 지미 페이지가 줄담배를 피다가 공연 한시간만에 쓰러지는가 하면 투어시작한지 몇달안되어 로버트 플랜트의 아들 Karac Plant가 위염인지 뭔지로 죽었다. 밴드는 이후 공연일정을 모두 취소했다.
이들은 78년 6월이 되어서야 겨우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바의 스튜디오에서 새 앨범 녹음을 시작한 것이다. 79년 8월에 이들은 간만의 대규모 공연에 나섰다. 유명한 Knebworth페스티벌이 바로 그것으로 이때의 공연에는 사람들이 말 그대로 운집했다고하며 상당수의 사람은 공연이 끝난 다음에 다음날 공연까지 텐트를 치고 있었다고 한다.
새 음반 In Through the Out Door는 79년 9월에 발매되었으며 역시 영미 양안에서 챠트 1위에 올랐다. 그뿐 아니라 그들이 낸 음반이 모두 빌보드 200안으로 들어가서 침체에 빠진 미국 음반시장을 활황으로 몰아넣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사실 진정한 음악적 배신(?)은 이 음반이었다. 전작에서 느낀 한계를 벗어나려는듯 존 폴 존스는 키보드를 연주하기시작했고 로버트 플랜트의 보컬색도 조금 굵어졌다(마치 개가 컹컹 짖는듯...-_-). 미국색의 곡들도 있고 팝적인 성향도 강하다.
재킷이 아주 특이한데 LP가 서류봉투안에 들어있었으며 LP재킷은 6종류의 조금씩 다른 커버로 발매되었다. 즉 판을 뜯기전에는 자기가 어떤 재킷의 음반을 샀는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첫곡 In the Evening의 도입부에 깔리는 연주는 '우리는 변했다'라는 느낌을 주기 충분하다. 다음곡 South Bound Saurez는 피아노 반주가 깔린다. 심지어 Hot Dog에서는 컨트리 연주까지 나온다. 다음면도 마찬가지. Carouselambra의 전주를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나는 제플린에게 적의까지 가졌었다. All My Love라는 히트곡에서도 I'm Gonna Crawl에서도 깔리는 키보드 사운드는 좀 질렸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이 앨범이 잘 만들어진 팝락앨범이라는 생각이고 레드 제플린이라는 보증수표는 아직 부도나지 않았다라는 생각이다. 사실 좋은게 좋은거라고 귀에 박히고 히트하는 노래는 기본적으로 좋은 것이다. 하지만 곡을 잘 만들어서 대중에게 호소하는 것이 좋은 것이지 대중을 위해 자신들의 자세를 바꾸거나 뭐든지 하는것까지 좋은것은 아니다. 이들의 변화는 전자의 것이지 결코 후자의 것은 아니었다. 배신 운운할 필요까지는 없다.
어쨌거나 이 음반은 대박 히트했고 공연과 수익 모두 전성기때의 수준을 회복했다. 이젠 미국에서도 여러 상들을 쓸어오기 시작했다.
적어도 이 음반에서 제플린은 '우린 뭐든지 해볼 용의가 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들이 변화한 사운드에서도 전성기처럼 힘있고 가슴벅찬 사운드를 들을 수 있을지는 사실 이 음반을 듣고서는 확신할 수 없다. 그리고 결코 확인할 수 없게 되었다.
**1982 Coda**
80년 9월 25일 레드 제플린의 드러머 존 보냄이 과도한 음주후 토사물에 질식하여 사망했다. 그리고 밴드는 12월 4일에 공식적으로 해산을 발표했다.
그리고 82년 11월에 자신들의 음악에 종언을 찍으려는 듯 미발표곡들을 모아 마지막 앨범 Coda를 발매했다. 곡들이 좀 짧지만 전체적으로 흠잡을 곳이 별로없는 컴필레이션으로 이들의 파워풀한 연주를 즐기기에 전혀 문제가 없다.
앞면은 69년부터 72년까지의 곡으로 예전 하드락 스타일의 곡들이다. 확실히 이들의 사운드중에서 69년의 좀 설익었지만 파워풀한 사운드는 이들의 시기중에 가장 빛났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이후 농익어가는 연주는 점차 미끈해지지만 솔직히 69년의 살가움과는 거리가 좀 있다.
뒷면은 78년에 녹음된 곡들로 그 분위기는 Presence앨범에 가깝다. 이중 인상적인 것은 Bonzo's Montreux인데 이는 존 보냄의 드럼솔로이다. 내 생각에 존 보냄은 그렇게 대단한 드러머는 아니었지만 레드 제플린의 사운드와는 가장 어울리는 드러머라고 여겨진다. 이는 링고 스타가 별로 능력은 없었지만 비틀즈에 딱 어울리는 드러머였기 때문에 훌륭했다라는 것과 유사한 느낌이다.
이후 지미 페이지는 Firm, 솔로활동, David Coverdale과의 협연, Black Crowes와의 협연 등등 줄기차게 활동을 했지만 사실상 거의 무시당했다. 로버트 플랜트도 마찬가지. 그는 90년대까지 계속 솔로음반을 발표했다. 그동안 잠자코있던 존 폴 존스는 앰비언트적인 음악을 시도하였으며 베이스 솔로음반을 내기도 하였지만 역시 마찬가지.
그들은 레드 제플린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주목받는 때는 가끔 로버트 플랜트와 지미 페이지가 만날때 뿐이다. 그들이 협연이라도 한번 하면 당장 세간에는 레드 제플린이 재결성되네마네등의 루머가 떠돈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지미 페이지만큼은 자신만의 사운드를 뿜어낼 수 있는 음악활동을 할 수 있는 인물인데 그렇지 못해서 안타깝다.
작년에는 그들의 공식적인 베스트음반이 지미 페이지의 선곡으로 발매되었다. 밴드가 붕괴된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레드 제플린이라는 이름은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앞으로 몇년있으면 또 무슨 라이브니 무슨 쎄션이니 하면서 계속 나올것이다.
락 사상 가장 완벽했던 앙상블에 경의를.
**시대순으로 정리한 레드 제플린의 디스코그래피:**
1969 Led Zeppelin 1969 BBC Sessions[Disk 1] 1997 1969 II 1970 III 1971 BBC Sessions[Disk 2] 1997 1971 nothing[aka Zoso or IV] 1972 Coda[Side A] 1982 1973 Houses of the Holy 1973 The Song Remains the Same 1976 1975 Physical Graffiti 1976 Presence 1978 Coda[Side B] 1982 1979 In Through the Out Do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