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ars For Fears

롤랜드 오자발과 커트 스미스로 구성된 영국의 뉴웨이브 듀오. 내면의 상처와 고통을 다룬 가사와 팝적 감수성, 프로그레시브적 요소가 결합된 독특한 사운드로 'Songs from the Big Chair', 'The Seeds of Love' 등의 명반을 남겼다.

정철

zepelin@popsmail.com

기분이 꿀꿀해서 한번 열심히 써본 글입니다. 이들의 3집정도는 아트락이라고 주장해도 되지않을까 싶은데요...^^;

Tears for Fears, 오해와 스타덤에 묻혀버린 슬픈 영혼

뉴웨이브? 그거 날라리 팝 아냐?

요즘에는 그래도 많이 재평가가 되고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음악 꽤나 듣는 사람들이 "나 뉴웨이브 음악 좋아해."라고 자신있게 말한건 몇년 되지 않을거다. 듀란듀란Duran Duran이나 컬쳐클럽Culture Club으로 대변되는 뉴웨이브는 아무래도 묵직한 메틀이나 고상해보이는 프로그레시브락에 비해 좀 가벼워보이는 것이 사실이니까.

락음악에서는 온갖 장르들이 마구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가 하는데 아마도 가장 잘못알려진 장르중의 하나가 뉴웨이브일 것이다. 장르란 그 특성상 명확하게 나누어지지도 않을 뿐더러 지칭하는 범위도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뉴웨이브라는 말도 좁게는 뉴로맨틱스New Romantics나 신스팝Synth Pop, 파워팝Power Pop을 말하기도 하지만 넓게는 펑크가 떠난 자리를 메우던 신진세력을 통칭하기도 하는 그런 장르명이다.

뉴웨이브를 간단하게 날라리 팝이라 말할 수가 없는 것은 바로 몇몇 거장들이 다른 장르의 밴드들 못지않은 입지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저팬Japan/데이빗 실비앙David Sylvian, 디페쉬모드Depeche Mode 그리고 펫샵보이즈Pet Shop Boys를 생각해보자. 일단 이들이 남긴 앨범들이 각각 10장을 넘기고 있으며 디페쉬모드와 펫샵보이즈는 메인스트림에서 거대밴드로 성장하였다. 그리고 이 세 밴드는 모두 뉴웨이브에서 시작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일렉트로닉스와 팝적 감수성, 그리고 락적인 요소들을 섞어나갔는데 현재 이들이 주류 락계의 가장 진보적인 작가군에 속한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아마 없을것이다. 특히 데이빗 실비앙은 메인스트림에서 벗어나 여러 아방가르드 씬의 작가들과 협연하면서 자기만의 내면세계를 구축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원래 뉴웨이브New Wave라는 말은 평론가들이 상업적 의도로 쓰기시작했다고 한다. 당시 펑크는 이슈거리가 되었지만 워낙 사람들에게 위협적으로 다가가 상업적인 면에서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평론가들은 공격적인 펑크와는 다른 이 말랑말랑하고 춤추기 좋았던 이 즐거운 음악을 부를때 원래 50년대 새로운 프랑스 영화를 지칭하던 뉴웨이브라는 말을 사용한 것이다. 90년대들어서 얼터너티브Alternative라는 말을 새로 사용한 것과 비슷하다고 여기면 크게 틀리지 않다. 얼터너티브 락이 결코 대안적인 음악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락음악을 사적으로 얘기할 때 펑크와 섹스 피스톨스라는 이름은 도저히 넘어갈 수가 없다. 역사를 펑크 이전과 펑크 이후로 나누어 버린 거대한 족적이자 혁명이다. 뉴웨이브를 이해해는데에도 펑크 이후라는 면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오해하기 쉽다. 뉴웨이브라는 말과 함께 쓰이기 시작한 애매한 장르명 하나가 바로 포스트펑크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펑크가 죽어가던 78년근처에 나온 락음악을 주류 평론가들은 단 세가지로 분류했던 것이다. 펑크, 포스트펑크 그리고 뉴웨이브. 이렇게 애매한 장르명이니 종종 혼동되게 쓰이기도 했고 그 안에도 수많은 다른 스타일의 아티스트들이 있었다. 그래서 누가 나에게 "저 요즘 포스트펑크 들어요."라고 말하면 이 녀석이 뭘 듣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어지는 게다.

그래서 나는 나름대로 이렇게 생각한다. 포스트펑크는 펑크의 직선적인 음악적 태도와 이전의 락엘리트들이 가지고 있던 실험성/진지함을 함께 이어받은 락음악을 지칭하는 말로, 뉴웨이브는 펑크의 위험한 태도와는 정반대에 놓여있는 발랄한 팝적 감수성과 신세사이저라는 신기술이 만난 팝/락음악을 지칭하는 말로. 여전히 문제가 많음을 안다. 팝/락도 사실은 구분이 애매한 것인데다, 조이디비젼Joy Division같은 전형적인 포스트펑크 밴드가 뉴오더New Order라는 전형적인 뉴웨이브 밴드로 변신한 경우도 있는가 하면, 저팬이나 이 자리의 주인공 티어즈 포 피어즈처럼 팝적이면서 무척이나 귀티나고 진지한 음악을 했던 뉴웨이브 밴드들이 널려있으니까. 그래도 내겐 별다른 대안이 없는지라 그냥 내 방식으로 이해하기로 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께 이런 개인적인 의견을 적는것은 이렇게 이해하는 놈도 있으니 너무 장르규정같은 것에 연연하지 마시고 속편하게 음악을 들으시라고 권하기 위함이다.

티어즈 포 피어즈

결코 위대하지는 않았던 이 밴드를 굳이 소개하고 싶어하는 이유는 이들의 전성기 음반들은 히트작들임에도 불구하고 음악적으로 진보하는 양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밴드들 중에도 그런 이들이 있다. 특히 디페쉬모드나 토킹헤즈Talking Heads 같은 밴드들이 그러한데 이런 밴드들은 타 밴드들에 미친 영향력도 크고 상업적 성공도 이루었고 음반도 많이 내는등 여러모로 티어즈 포 피어즈에 밀릴 이유가 없다. 하지만 티어즈 포 피어즈는 초기 석장에서 음악적 발전양상이 매우 뚜렷하게 나타나므로서 한번 들여다보기에 좋다. 그리고 다른 밴드들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진 뉴웨이브 밴드다. 나는 덜 알려진 친구들에게 왠지 정이 더 가는 사람이니까. 마지막이자 결정적인 이유는 무척이나 프로그레시브적인 음반을 하나 내놓고 히트시켜서 예술성과 상업성의 조화라는 어려운 일을 해낸 밴드라는 것이다.

티어즈 포 피어즈는 롤랜드 오자발(Roland Orzabal, Aug 22, 1961 in Portsmouth, Hampshire, England)과 커트 스미스(Curt Smith, Jun 24, 1961 in Bath, Somerset, England) 이렇게 두명의 정식멤버로 이루어졌던 듀오였지만 전체적으로 롤랜드 오자발이라는 뛰어난 싱어-송라이터의 개인적인 프로젝트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Tears for Fears라는 밴드명은 아서 야노프Arther Janov라는 의사의 프라이멀 스크림 정신요법primal scream therapy에서 따온 말이다. 프라이멀 스크림 정신요법은 유아기의 내상체험을 재체험시켜 신경증을 치료하는 방법이다. 롤랜드가 이 정신요법에 심취하였고 훗날 이들이 데뷔작의 성공으로 미국에 갔을때 가장 처음 한 일중 하나가 이 프라이멀 스크림 정신요법을 받은 것이었다. 롤랜드와 커트는 어릴때부터 고향 친구인데 커트가 불량학생이 되어 어린시절을 보낼때 롤랜드는 책을 열심히 읽었다. 커트는 카메라나 바이올린같은것을 훔쳐다 팔아먹기도 했다는데 한번은 크리스마스 선물로 롤랜드에게 그 훔친 바이올린을 준 일도 있다. 그렇게 지내다가 롤랜드가 커트에게 프라이멀 스크림 정신요법을 접하게 했다고 한다. 롤랜드는 어려서 'Top of the Pops'같은 방송을 듣거나 'Disco 45'같은 잡지를 즐겨 읽으며 팝음악에 빠져있었고 그는 스스로 그것을 만들고싶다는 욕구를 강하게 느껴왔다. 롤랜드와 커트의 관계는 왬!Wham!의 죠지 마이클George Michael과 앤드류 리즐리Andrew Ridgeley의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음반 크레딧을 보면 작곡과 기술적인 면에서 거의 롤랜드의 이름밖에 나오지 않는데다가 롤랜드는 키보드, 기타, 보컬의 세 부분을 맡은 멀티플레이어인지라 아무리봐도 커트는 얼굴마담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한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커트는 보컬로서의 비중이 상당히 컸고 베이스주자였기 때문에 앤드류만큼 비극적인 상황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떻든 이러한 괴리감은 훗날 커트가 밴드를 나가게 되는 결정적인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이들의 첫 밴드는 그래듀에잇Graduate이라는 스카밴드였다. 80년에 유일한 음반인 Acting My Age가 나왔으니 아마도 동네 친구들과 모여만든 고등학생들의 스쿨밴드정도일 것이다. 나중에 이 음반은 티어즈 포 피어즈의 인기를 등에업고 재발매된거같은데 사실 구할 수도 없고 구할 의지도 없기때문에 음반을 들어보진 못했다. 하지만 냅스터napster.com에 이 음반의 수록곡 하나가 돌아다녀 Love that is Bad라는 마지막 곡을 들어볼 수 있었다. 롤랜드의 굵직한 목소리가 여전한, 훵키하고 아마추어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곡이다. 티어즈 포 피어즈의 느낌은 전혀 나지 않는다.

The Hurting

이들은 아마츄어적인 그래듀에잇을 나와 본격적인 프로뮤지션의 길을 걷기로 하고 그 방향을 당시 애덤 앤 더 앤츠Adam & the Ants나 디페쉬모드같은 밴드들이 열심히 활동하던 뉴웨이브의 막차를 타기로 한다. 훗날 커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밴드를 떠날 수 있었던 이유는 기술발전이 밴드 없이도 음악을 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왔기 때문이다. 그것이 'The Hurting' 앨범의 가장 큰 음악적 테마이다." 이들은 Pale Shelter와 Suffer the Children 이렇게 두곡을 그래듀에잇 시절부터의 친구인 이언 스탠리Ian Stanley의 8트랙 녹음기에 간신히 녹음해서 머큐리 레코드로 들고갔다.

83년에 발매된 이들의 데뷔앨범 The Hurting은 영국내에서 앨범챠트 1위까지 올라가서 그들은 아주 성공적으로 그토록 원했던 팝스타가 될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키보드가 많이 쓰였고 분명 팝적인 멜로디이지만 이 앨범은 다른 뉴웨이브 밴드들의 음악과는 좀 다르다. 어쿠스틱한 요소가 많고 사운드가 비어있기도 하며 비트가 빠르지 않아 결코 '춤출만한danceable' 음악이 아니다. 싱글 히트곡들은 그래도 약간 비트가 있고 뉴웨이브 특유의 뿅뿅 키보드가 많이 들어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마찬가지다. 그럼 도대체 왜 앨범이 히트한 것일까. 신인 아티스트가 살아남으려면 첫번째 싱글의 상업적 성공 여부가 중요하다. 이들의 첫 싱글이었던 Mad World는 82년 9월에 발매되어 챠트 3위까지 올라갔다. 당시의 주류장르였던 뉴웨이브의 어법에 충실했다는 것과, 여성 팬들의 공감을 얻기 딱 좋은 커트의 목소리 그리고 센스있는 사운드메이킹 정도가 첫 싱글을 그정도까지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이후 이들이 발매한 Change, Pale Shelter, The Way You Are(LP 미수록 싱글) 등이 모두 그런대로 괜찮은 챠트 성적을 올렸다. 커트는 Mad World의 성공을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는 앨범을 끝내고 첫 싱글로 Mad World를 공개했다. 우리의 의도는 그 곡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우리가 성공적으로 다음 곡들도 공개했으면 하는 것이었다. 우리도 레코드사도 그 정도로 히트할줄은 정말 몰랐다. 나는 런던으로 'Top of the Pops'에 출연하기 위해 뛰어가던 것이 기억난다. 우리는 출연하기위해 새 옷을 샀어야 했다." 사실 어떤 곡이 뜰 것인지는 며느리도 모른다. 운좋게도 이들은 시장에서 비교적 괜찮은 밴드라고 인정을 받아 싱글의 지속적인 성공, 그리고 앨범의 성공적인 발매를 이룰 수 있었다.

이 앨범에서 주목할만한 것은 자신의 내적 상처에 귀를 기울이는 롤랜드의 가사와 그것을 조용하지만 섬세하게 뉴웨이브적인 어법으로 노래하는 분위기이다. 앨범 타이틀인 '상처(The Hurting)'뿐만 아니라 가사에 거의 고통(Pain)이라는 단어가 들어있으며 이 단어는 꼭 첫글자가 대문자로 강조되어있다. 곡 제목으로 쓰인 Ideas as Opiates나 The Prisoner는 아서 야노프가 쓴 책의 소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가사도 대부분 고통을 느끼고 상처를 어루만지라거나(The Hurting, Memories Fade, Watch Me Bleed)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거나(Mad World, Suffer the Children) 사랑과 애정이 필요하다는(Pale Shelter, The Prisoner) 등의 내용이다. 재킷도 하얀 바탕의 한 구석에서 꼬마아이가 머리를 쥐어싸고 있는 사진이 아니던가. 전체적으로 놀랍도록 일관성을 가지고있는 앨범이라고 하겠다. 가사를 읽어보면 롤랜드는 상당한 내적 억압속에서 살아온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프다는 말을 많이한다. 특히 The Hurting은 이 앨범의 주제를 종합적으로 다루고 있으면서 아서 야노프의 영향이 많이 느껴지는 곡이며 Memories Fade는 시간이 갈수록 고독해지기만 하고 기억이 희미해지며 상처만이 남는 자신의 상태를 매우 솔직하게 말한 곡이다.

하지만 이 앨범은 앨범이라는 면에서 본다면 성공적이라고 말하기는 좀 어렵다. 전체적으로 비슷하고 허전한 사운드에 곡 배치의 묘미가 부족할 뿐더러 드라마틱한 요소가 없다. 좀 과장되게 말한다면 메틀에 길들여진 사람이 포크 음반을 듣는 기분이랄까. 그래도 각각의 곡들을 따로 듣는다면 나름의 맛이 있다. 물론 싱글곡들은 싱글곡으로 발매될만큼 듣기좋은 곡들임은 말할것도 없지만 싱글로 공개되지않은 곡들 중에도 좋은 곡들이 많은데 특히 Memories Fade같은 곡은 싱글로 내놓아도 충분히 히트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 만들어진 팝이다. 사운드적인 면에서 주목할만한 곡은 The Prisoner이다. 롤랜드는 스스로 이 곡에 대해 피터 게이브리얼Peter Gabriel의 3집(aka PG 3 or Melt Down)에 수록된 Intruder의 영향이 크다고 말한다. 효과음의 적절한 사용과 이질감이 느껴지는 리듬 그리고 중첩된 사운드는 이후 이들의 2, 3집에서 들려주는 사운드의 뷔페를 조금이나마 예견하게 하는 곡이다.

이들은 1집과 2집 사이에 The Way You Are라는 네번째 싱글을 내었는데 이 곡의 편곡은 1집 수록곡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꽉찬 사운드를 담고있다. 이들은 이 곡이 2집으로 넘어가는 징검다리의 역할을 했다고 밝힌다.

정리하자면 이 앨범은 무척 내면적이고 이후 이들의 사운드의 초석이 되는, 데뷔앨범의 역할에 충실한 팝 음반이며 완결성있는 앨범이라기보다는 싱글 모음집의 의미가 더 큰 음반이라 하겠다.

Songs from the Big Chair

이들 역시 자신들의 데뷔작에는 뭔가 중요한 것이 빠져있다는 것을 알았다. 커트는 데뷔앨범을 녹음하면서 아무런 재미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커트와 롤랜드는 데뷔작에는 거친 느낌과 음악적 농익음이 부족했다는 것에 동의했다. 롤랜드는 말한다. "나는 The Hurting 앨범은 일종의 시라고 생각한다.", "락앤롤은 사실 이전의 우리에게는 안맞는 단어였다, 우습게도. 우리는 전작에서 부족했던 기본적인 흥분을 여기에 담았다." 커트는 "데뷔작에는 유머와 집중이 빠져있다. 꼭 나쁜것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우리를 심심한 녀석들이라고 여겼는지도 모른다. 여기서 우린 그것을 뒤집었다."라고 했다.

85년 2월에 발매된 이 앨범 Songs from the Big Chair는 미국에서 5주간 1위를 차지하며 5백만장을, 영국에서는 3백만장을, 세계적으로 천만장 이상 팔아치운 메가 밀리언셀러가 되었다. 두 곡의 빌보드 1위곡을 가지고있는 이 앨범은 Everybody Wants to Rule the World라는 곡 하나로 단숨에 티어즈 포 피어즈를 영국내 스타가 아닌 세계적 스타로 만들었다. 심지어는 우리나라에서도 당시에 라이센스가 되었었고 라디오를 한참 탔으니까. 이 앨범의 타이틀 Songs from the Big Chair는 다니엘 페트리에Daniel Petrie가 감독했던 76년의 TV시리즈 '시빌Sybil'에서 따온 것이다. 다중인격을 가진 시빌이라는 이름의 아가씨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녀는 '큰 의자Big Chair'에 앉을 때만 평안을 얻는다. Shout 싱글의 B면곡이었던 Big Chair에는 이 시리즈의 소리가 샘플로 사용되었다. 아마도 이들은 자신들의 음악이 '큰 의자'가 되길 바랬을 것이다.

전작과 가장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것은 이들이 이미 밝혔듯 락적인 훅과 풍성해진 사운드 그리고 앨범적인 구성이다. 롤랜드의 목소리는 성량이 무척 풍부해서 드라마틱한 곡을 소화하기에 적합한데 롤랜드는 자신의 목소리에 대해 잘 알았던것 같다. 뒤에 조금씩 여운이 남는 그의 우렁찬 목소리는 곡들에 텐션을 집어넣는데 아주 적절히 사용되고 있으며 그 사이사이는 맛깔나는 리듬이 중첩적으로 사용되고 있어 사운드가 풍성하다는 느낌을 준다. 롤랜드의 목소리는 퀸Queen의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나 발렌시아Valensia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한 오페라틱operatic한 목소리다. 첫곡 Shout부터 Mother's Talk까지 앞면을 채우는 곡들은 모두 신나는 곡들이다. 특히 Shout과 Everybody Wants to Rule the World는 빌보드 1위곡들답게 멜로디어스하면서 귀에 쏙쏙 박힌다. 앨범 자체가 좀 짧기도 하지만 군더더기 없는 곡들의 배치는 '벌써 끝이야?'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매끈하게 이어져있다. 앞면이 곡 자체만으로도 청자의 집중을 얻어내는데 성공했다면 뒷면은 구성으로 청자의 집중을 확보한다. 첫곡 I Believe는 롤랜드가 로버트 와이엇Robert Wyatt에게 바치는 서정적인 곡으로 곡을 쓸 때 로버트와 함께 쓰는 느낌으로 작업했다고 한다(싱글로 발매되었으며 B면곡으로는 로버트 와이엇의 잔잔한 곡 Sea Song을 커버했음). 다음곡으로 강렬한 베이스라인으로 시작하는 Broken이 나오는데 황당한 것은 그 다음곡인 Head over Heels/Broken(Live)접속곡이다. 스튜디오 곡 뒤에 자연스럽게 라이브트랙을 집어넣어 Broken이 가진 힘을 Head over Heels까지 끌고온다. 가뜩이나 짧은 앨범인데 교활하게 곡을 재활용했다는 혐의를 지우긴 어렵지만 어떻든 청자의 귀를 붙잡아두는데 성공했다는 것을 부정하기도 어렵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길게 여운을 남기는 곡 Listen으로 앨범이 끝난다. Everybody Wants to Rule the World는 86년 2월에 열린 스포츠 에이드Sports Aid를 위해 Everybody Wants to Run the World로 개사되어 다시 싱글챠트에 올라가기도 했다.

가사적인 면에서는 여전히 어린시절의 상처나 관계의 붕괴, 내적인 고백 등을 다루고있지만 전작에 비해서 훨씬 은유적이며 모호하다. 이들은 전작의 싱글이었던 Change의 가사를 그저 아무것도아닌 팝송이라고 자평했는데 Shout같은 곡들도 마찬가지로 생각할 수 있겠다. 가사의 역할은 이전 앨범에 비해 훨씬 약해졌다.

사실 다른 예술도 마찬가지지만 그중에서도 음악은 가장 추상적인 형태의 예술인지라 감각이 제일 중요하다. 아무리 특이한 효과나 탁월한 연주력같은 것을 구사한다고 할지라도 감각이 빠져있으면 그건 아티스트의 자위 이외엔 아무것도 아니지만 초기의 펑크처럼 단순한 형태의 음악도 감각만 있다면 사람들이 즐기게되는 것이다. 이 앨범에는 바로 그 감각이 살아있다. 중첩되는 사운드, 적재적소에 들어가는 코러스와 샤우트 그리고 색서폰과 퍼커션. 풍부한 성량의 목소리와 그것을 자유자재로 변형시켜 내는 센스. 이런 것들이 하나하나 살아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 무척 조화롭게 연주되어있는 것이다. 다시금 밴드음악이 주목받는 요즘에는 어떻게보면 정통에서 벗어난 요란한 음악으로 비칠지도 모르지만 아무 제한이 없는 자유시처럼 가져다 쓰고싶은 사운드를 마음대로 가져다가 하고싶은대로 구사한 이 음반은 무척이나 '80년대적'이다. 이런 곡들을 만들 수 있었기에 롤랜드는 이 앨범을 내고 이보르 노벨로Ivor Novello시상식에서 독보적인 작곡가 상을 받을 수 있었으며 Everybody Wants to Rule the World는 브릿 어워드Brit Award에서 올해의 싱글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의 음악은 라이브에서 구사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어서 인터넷에 떠도는 이들의 당시 라이브를 들어보면 대체로 형편없는 사운드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리고 이런 형태로 음악이 나아가면 점차 커트의 비중이 작아지는 것도 막을 수 없다. 음악적인 면이 점차 복잡해짐과 동시에 보컬에서도 능숙한 롤랜드의 비중이 커지고있는 것이다. 사실 롤랜드는 이 시점에서 커트의 영역을 보다 확실하게 해주었어야했다.

이 앨범은 전작에서 내면에 귀기울이느라 놓쳤던 무언가를 찾아 자신들의 사운드를 확립하게 만들어준 앨범이다. 전작의 진지함에서는 조금 멀어졌지만 전작의 고급스러움과 락적인 강렬함을 조화롭게 엮어내어 80년대 팝의 가장 중요한 앨범 10장 안에 들어갈 수준의 감각과 상업적 성공을 이루어내기도 했다. 그리고 여기서 대박을 터뜨렸기 때문에 다음 앨범부터는 무엇을 해도 사람들이 일단 들어준다는 발판이 마련되었다. 다음 앨범은 제작단계부터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것이며 정말 후진 음악을 만들지 않는 한 사람들은 그 관심을 끄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롤랜드는 이 기회를 정말 잘 살렸다.

The Seeds of Love

전작에서 막대한 성공을 거머쥔 이들은 무엇을 해도 괜찮은 음악적 환경에 놓이게 되었다. 하지만 롤랜드는 매우 힘들어했다. "2집을 끝냈을 때 사람들은 또다른 Big Chair를 만들기를 원했다. 나와 커트를 뺀 나머지 사람들은 우리에게 참 좋은 시기라고 말했다. 난 그렇게 보지 않았다. 나는 무언가를 만든 사람이 그 무언가를 파괴해야한다는 관점을 가지고있다. 그것은 무척 아프고 어려운 일이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롤랜드는 Big Chair를 만들 때 했던 방식으로는 스스로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있었다. 게다가 미국시장에서의 성공은 이들로 하여금 수많은 프로모션 관련 작업들과 연이은 대규모 공연으로 바쁘게 만들었다. "대부분의 사운드는 신서사이저와 드럼머쉰에 프로그램되어있었다. 제대로 된 표현이나 라이브에서의 생동감이 나타날 수가 없었다. 그것은 거의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이들은 음악과 관객에게서 점차 멀어져갔던 것이다.

그러다가 롤랜드는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는 수천명이 모인 가운데서 현란한 조명을 앞에두고 연주했는데 그 느낌은 공허했다. (공연이 끝난 후) 호텔에서 샤워를 하고 내려왔는데 바에서 왠 밴드가 공연하길래 들어갔다. 그자리에서 올레타 애덤스Oleta Adams라는 여인이 밴드와 함께 노래부르고 있었다. 보통 바가 아닌듯 많은 가족들이 옷을 차려입고 모여있었다. 말로해서는 알 수가 없다. 그 자리에서 느껴야 했다. 그것은 믿기 힘든 연주였으며 내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주위는 영적인 분위기로 가득 찼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구나, 나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들은 올레타의 공연에서 기계로는 할 수 없는, 다른 연주자들과의 교감이 없이는 할 수 없는 그 무언가를 들었던 것이다.

89년 8월 공개된 이 앨범은 전작과 같은 엄청난 성공은 거두지 못했지만 영국내에서 1위를 차지하고 미국에서도 10위안에 드는 양호한 성적을 거두었으며 네 곡이 싱글커트 되었다. 물론 9개의 스튜디오를 전전하고, 4명의 프로듀서가 제작을 도왔으며, 백만파운드 이상의 비용을 쏟아 3년동안 제작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결코 훌륭한 수입은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이들은 이 앨범으로 팝스타에서 예술가가 되었다.

이 앨범은 백만파운드짜리답게 무척이나 사치스럽다. 재킷부터 동화적이고 키취적인 이미지가 가득 담겨있는데 이 이미지들은 모두 가사와 연관이 있는 것들이다. 앨범 안에 그려진 판화나 이후 픽쳐디스크로 발매된 싱글들 모두 이런 동화적인 이미지를 담고있다. 내가 예쁜 것들을 소장하는 취미는 별로 없지만 솔직히 이 싱글들이 무척이나 탐난다. 턴테이블에 걸기도 아까울것 같다. 그리고 참여한 연주자들의 면면이 매우 화려하다. 피터 게이브리얼 밴드의 명 드러머 마누 캇체Manu Katche, 팝스타이자 제네시스Genesis의 명 드러머인 필 콜린스Phil Collins, 정상의 세션드러머 사이먼 필립스Simon Philips, 풍부한 성량의 소울 싱어 올레타 애덤스, 아방가르드 트럼페터 존 하쎌Jon Hassel, 청아한 싱어-송라이터 케이트 세인트 죤Kate St.John 등 유명한 이름만도 십여명이다. 처음부터 이들과 함께한 키보드주자 이언 스탠리도 여전히 끼어있다. 물론 전작에서도 프로그레시브락 팬들이라면 눈에 익을 색서폰주자 멜 콜린스Mel Collins, 피터 게이브리얼 밴드의 드러머 제리 마로타Jerry Marotta등의 훌륭한 뮤지션들이 참여했었지만 이번 앨범만큼 화려하진 않았다. 롤랜드는 이번 앨범작업을 위해 런던에 개인 스튜디오인 넵튠즈 키친Neptune's Kitchen까지 마련했다. 여기서 빠뜨려서는 안될 인물이 니키 홀랜드Nicky Holland라는 여성 키보드주자인데 이 앨범에서 그녀는 롤랜드와 함께 5곡을 작곡했다. 그녀는 케이트 세인트 죤과 함께 활동한 친구이기도 한데 83년에 티어즈 포 피어즈의 월드투어를 도와주면서 롤랜드와 친해졌다. 86년에 롤랜드가 올레타를 만나고 런던으로 돌아왔을 때 커트는 부인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Bath로 들어갔고 롤랜드는 니키와 함께 스튜디오로 들어가서 곡을 썼던 것이다. 니키 홀랜드는 지금까지 두장의 솔로앨범을 발매하고 있으며 류이치 사카모토Ryuichi Sakamoto, 데이빗 번David Byrne, 드림 아카데미Dream Academy등의 아티스트들과 함께 작업이나 공연을 했다. 그리고 그녀는 무척이나 미인이다.

이 앨범에서 롤랜드는 Big Chair를 만들고 성공시키는 과정에서 느꼈던 오류를 과감하게 수정했다. 전작에서는 신서사이저와 락적인 기타가 중심을 잡았다면 여기서는 풍성한 보컬과 담백한 피아노가 만들어내는 단순한 멜로디가 전체적인 음악적 기둥을 이루고 있다. 롤랜드와 커트는 이 부분에 대해 올레타에게 '우리의 영혼을 올바로 알도록 도와주어For Authenticating Our Soul'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반쯤은 비워두고 반쯤은 전작에서 확립했던 사운드의 중첩으로 채웠다. 즉 여백에서 빽빽한 사운드까지 다양한 스펙트럼 속에서 롤랜드는 듣는 이로 하여금 감정의 고조와 이완을 맛보게 했던 것이다. 소리의 여백이 있어야 다른 소리가 더 절실하게 들릴 수 있다는 것을 롤랜드는 이젠 알았다. 이것은 The Hurting에서의 허전함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때는 노련하게 소리를 만들어낼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변화도 별로 없었으며 여백은 색을 칠하지 '못한' 공간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 앨범에서 보이는 여백은 조화를 위해 색을 칠하지 '않은' 공간이다. 하지 않은듯 하면서 결코 빈티나지 않는 그것은 김부식金富軾이 삼국사기三國史記 백제본기百濟本紀에서 백제문화를 평할 때 말했던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儉而不陋 華而不侈' 바로 그런 경지의 예술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수준의 예술을 성취하기까지는 무척 많은 고통(Pain!)이 필요하다. 롤랜드는 3년동안이나 고생했다. 물론 채색된 부분에는 아껴두었던 열정을 모두 쏟아내어 몰아치는 사운드를 만들어내는데 이는 특히 앨범의 절정인 Year of the Knife에서 잘 드러난다. 라이브 분위기로 시작해서 꽉찬 사운드와 흥겨운 코러스, 그리고 롤랜드의 오페라틱한 목소리는 듣는이를 절정으로 끌어올린다. 각각의 곡들에서도 작은 절정부들이 존재하면서 앨범 전체적으로는 Year of the Knife에서 카운터 펀치를 날리는 구성은 무척 훌륭한 것이다. 그리고 롤랜드는 여기서 재즈와 특히 소울적인 요소를 담고자 했다. 피아노 터치와 스네어드럼이 많이 쓰인 부분에서 우리는 재즈적인 분위기를 많이 느낄 수 있는데 이는 특히 Badman's Song에서 잘 드러난다. 소울적인 요소는 앨범 전체를 가득 메우고있는데 롤랜드와 올레타의 풍성한 보컬 그리고 그 바닥을 받쳐주는 코러스는 영락없는 소울이다.

잔잔한 첫곡 Woman in Chains는 롤랜드와 올레타의 보컬이 너무나 잘 어울려서 방심하다가는 눈물이 나올지도 모르는 그런 맑은 곡이다. 그리고 재즈적 터치가 강한 Badman's Song, 여러가지로 변형된 보컬과 코러스가 무척 현란하게 사용된 소울풀한 곡 Sowing the Seeds of Love가 나온 뒤에 Advice for the Young at Heart에서 나오는 커트의 맑은 조언이 앞면을 마무리짓는다. 사실 지금까지 롤랜드의 오페라틱하고 소울풀한 풍부한 성량만을 강조해서 말해왔지만 좀 더 뉴웨이브 밴드들의 전형적인 목소리는 바로 커트의 그것이다. 둘다 음색이 비슷해서 조금은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커트는 약간 맑고 여린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롤랜드의 조금은 느끼한 분위기를 커트가 상쇄해주고있는 것이다. 뒷면의 첫곡은 이국적인 멜로디로 시작하는 잔잔한 곡인 Standing on the Corner of the Third World이다. 이 곡의 뒷부분에서는 자유분방한 색서폰 연주가 다시 재즈적인 분위기를 내고있다. 다음곡인 Sword and Knife는 듣는이에게 지속적으로 땔감을 주어 감정을 고조시킬 준비를 시키는 곡이다. 그리고 나오는 곡이 Year of the Knife와 Famous Last Words의 접속곡으로, 앞서 말했던 Year of the Knife의 폭발적인 연주와 마지막 Famous Last Words의 잔잔한 마무리가 아주 부드럽게 이어지고 있는데 나는 이 부분에서 정말 아쉬워진다. '아~ 이 앨범이 끝나가는구나.'라는 생각이 팍 스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깨끗하게 마무리를 지었기에 이 앨범은 산뜻한 여운을 남긴다. LP를 기준으로 곡을 배치할 때 이렇게 매끄럽게 기승전결의 구조를 만드는 방법은 이미 Big Chair앨범에서도 성공한 바 있는데 잘못하면 진부하게 들릴수도 있지만 잘 하면 듣는이로 하여금 한 곡을 듣는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다. 역시 예술은 감각이다.

앨범의 가사는 전작들처럼 일관되어있는데 대부분 소외받는 이들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이다. Sowing the Seeds of Love는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정치적인 곡이다. "지난 총선뒤에 쓴 곡인데 대처가 또 당선된 것에 나는 매우 분노했다. 나는 정치적인 팝을 쓰고싶었지만 사람들이 분개하고 짜증나하는 곡을 쓰고 싶진 않았기에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곡을 쓰려고 노력했다." 분위기가 이어지는 뒷면의 마지막 세곡은 전쟁과 폭력이 얼마나 나쁜 것이며 시간이 간다고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약간은 묵시록적으로 말한다.

이런 완벽한 팝 앨범을 만들기위해 롤랜드는 무척 고생을 했다. 86년 말에 영국으로 돌아와 작곡과 녹음을 시작했는데 1년이 지나도록 결과가 만족스럽게 나오지 않았다. 고민하던 그와 커트는 결국 다시 미국으로 날아갔고 자신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켰던 올레타 애덤스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녀를 데려와 다시 팀을 꾸린다. 이 때 뭔가 확신이 생긴 그들은 레코드사로 찾아가 스스로 프로듀싱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2년동안 녹음과 편집, 그리고 곡과 가사를 수정하는 작업을 계속했다. 롤랜드는 이렇게 말한다. "많은 시간을 수정과 편집하는데 보냈는데 가장 극단적인 예는 Badman's Song이다. 드럼파트 수정에만 꼬박 보름이 걸렸다. 세션이 끝나면 마누(마누 캇체)가 연주한 수많은 녹음 테이프가 나오는데 그중에서 가장 좋은 부분만 잘라서 모으는 것이다." 녹음작업이 끝나갈 무렵 커트는 이렇게 소감을 말했다. "이제 끝난다니 매우 복잡하고 흥분된 심정이다. 그리고 이젠 홍보를 해야한다는 공포가 찾아온다. 모든게 끝난다니 괜히 슬프기도 하고. 이렇게 오래 작업을 하다니 우리는 자격이 없는것은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고. 불운하게도 우리는 천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끝까지 하겠다는 열정이 있었다."

내가 이 앨범을 처음 들었을 때의 느낌은 요즘 흔히 말하는 '필이 꽂힌' 느낌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지하철을 타고 집에 오다가 깜빡 졸아서 한 정거장을 지나쳤었다. 집에 되돌아가기 위해 궁시렁거리며 내렸는데 그때 나오던 곡이 바로 Sword and Knife였다. '흠 이거 들을만하군'이라고 여기며 열심히 귀기울이던 차에 Year of the Knife가 흘러나오면서 나는 몸을 흔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별도 없이 가로등만 몇 개 있는 깜깜한 밤에 티어즈 포 피어즈와 나는 밴드 하나 관객 한명의 라이브를 했던 것이다. 집에 들어가서도 또 돌려서 앨범을 세번정도 듣고 잔 것 같다. 나는 이 앨범에 대해 생각할 때 '바로 이런 음악을 아트락이라고 불러야 하는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재즈, 락, 소울, 팝이 뒤섞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자연스럽고 어쿠스틱하며 너무도 뉴웨이브다울 수 있다는 모순적인 일이 벌어진 것이다. 외지에서는 조금 저평가된 감이 있는데 나는 이 앨범이 80년대의 가장 중요한 음반 5장안에 들어가야한다고 생각한다. 롤랜드가 존경한다는 비틀즈에게 들려주어도 전혀 부끄러울 것이 없는 앨범이다.

안병욱

저도 뭐.. 386세대의 마지막 자리(만32살/88학번/69년생)에 위치한지라 '자신있게' 뉴 웨이브를 좋아해 라고 하는 편은 안되지만, 틈이 나는대로 이쪽을 열심히 들어보곤 있는 중 입니다.. ^^;; 예전의 추억도 되살릴겸...

예바동에도 80년대 팝락을 좋아하시는 분들 꽤 되시죠...

그런데 그 당시...중딩, 고딩때는 몰랐는데 지금와서 들어보면, 정철님이 말씀하신 대로 뉴웨이브 계열이면서도 '충분히 팝적이면서도 충분히 진보적인' 음악들이 정말 많았던 것 같아요... 이런 얘긴 이창식님과 사석에서 얘기할때도 동감했었던 것이구요.. ^^ 실은 Duran Duran에게서 조차도 가끔은 그런 기분이 들때가..^^;;

특히 저에겐 Simple Minds의 경우, 대단한 만족감으로 다가왔던것 같아요.. 정철님이 Tears for Fears에 느꼈던 것과 동감일거란 생각도 들고요.. ^^;;

David Sylvian의 경우엔 정말로 불가사의한 마력을 지닌 뮤지션이라 생각해요.. 그의 기본적인 뉴웨이브적 성향은 차치하고서라도, Can의 Holger Czukay와 발매한 2매의 앨범 (Flux and Mutability'89, Plight & Premonition'88)에선 정말 Experimental Prog 사운드를 들려주거든요..

다른 앨범에서도 세션맨들은 아방계열의 대가들이면서 들려주는 사운드는 딱히 데이빗 실비앙 식이라니....

정철님의 Tears for Fears 리뷰는 예바동에서만 보기엔 아까운 것 같고 Roland Orzabal의 앨범 속지해설로 들어가서 많은 분들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