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 Aerosol Grey Machine
1969 The Least We Can Do Is Wave to Each Other
1970 H to He, Who Am the Only One
1971 Pawn Hearts
1973 Long Hello
1975 Godbluff
1976 Still Life
1976 World Record
1977 The Quiet Zone/The Pleasure Dome
1978 Reflection
1978 Vital
1978 Vital Live
The Least We Can Do Is Wave To Each Other
이들의 그룹네임이나 앨범타이틀을 보면 뭔가 과학적인뉘앙스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리더인 피터 해밀이물리학을 전공한게 아닐까 추측되기도 하는데...
하지만 막상 음악을 들어보면, 그다지 과학적(?)이란 느낌은들지 않는다. 흔히,
'과학적'이라고 하면 '이성적'인 것과연관시키고 '감성적'인 것과는 상대적인
개념으로 생각하기쉽다. 하지만 내가 듣기엔 이들의 음악의 느낌이나
전달하는이미지는 따뜻하며 인간적이다. 잠깐 앨범 타이틀의 의미를생각해보면
그런점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알려져있다시피 이 밴드의 리더는 피터 해밀이다. 그는동시대의 훌륭한 밴드의
리더들과 마찬가지로 독특한 자기세계를 가진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사상이라든가
아이디어가거의 밴드의 그것이라고 할 수 있을만큼 절대적인 영향력을미치고 있는데,
그의 솔로작을 포함한 일련의 작품들을살펴보면 실험적인 듯 하면서도 무엇인가
인간적인 감정을담아내려 한 흔적을 살펴볼 수 있다. 따라서 작품들이
때로는정합성을 상실한 채 어정쩡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래도 비교적 초기에 해당하는 이들의 2집인 본작을 들어보면,그들은 밝은 신념을
지닌 강한 젊은이들이라는 느낌을 받게된다. 이 작품이 발표되었던 69-70은
싸이키델릭과 프로그레시브록이교차되던 시기이다. 즉, 사람들의 사고가 전환하고 록
음악의가능성이 열리던 시기였다. 이러한 점이 그들의 음악에 긍정적인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러한 양상은 사운드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Refugee라든가Out of my Book에서
보여준 낭만적이 따사로운 분위기는 이후의작품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타이틀이 의미하듯,인간관계에 있어서 밝고 긍정적인 느낌들이 이 작품의
전반적인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연주도 이후의 작품들에 비하면 상당히단순하며,
다듬어지지 않는 듯 하다. 이후의 작품들은 늘어가는피터 해밀의 주름살 만큼이나
복잡하며 진지해 지는데...역시, 이 작품의 매력은 바로 그런 것들이 아닐까?
가부의 논란이 많지만, 'Darkness(11/11)', 'Refugee','Out Of My Book','After the
Flood'의 마력은 일단 인지되면 제거 불가능.
H to He Who am the Only One
이 타이틀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수소에서 헬륨으로...오직 하나가 되다.'
자켓 뒷면을 살펴보면 몇가지 화학식과 더불어 이것이 태양에서의 수소핵융합
과정임을 보여주고있다~전작에서도 그러하듯, 타이틀은 은유적 의미를 포함한다.이
작품에서 피터가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은 '인간의 소외'에 관한 것 같다. 개인과
개인간의 소외, 그리고 창조주의 손을 떠난 인간의 소외...
전작이 발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발표된 3번째 작품이지만, 시각은 많이 변해 있는
듯 하다. 그의 고민은 깊어만가고, 시선은 상당히 날카로와졌다. 왠일일까? 아마도
밴드의 활동이 본격화되고, 리더로서의 역할을 맡은 후로 그의 주변에 많은 변화들이
생겼을 테고, 그러한 변화들이 그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한 것 같다.
그런 변화가 그와 밴드, 그리고 그들의 음악에 많은 영향을미쳤음은 물론일 것이다.
작품을 살펴보면,전반적으로 대곡지향적인 복잡한 구성의 곡들로 채워져있다.등등의
이유로 이 작품은 전작에 비해서 기억에 쉽게 남는작품은 결코 아니다. 게다가
곳곳에서 등장하는 데이빗 잭슨의신경질적인 색소폰 연주는 분위기를 한층 어둡고
무겁게 만든다.VDGG의 골수팬이라면 몰라도, 초심자들에게 이런 분위기가 결코
달가울 리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이 작품이별로라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내가 그럴리 없겠지만^^;;) Killer, House With No Door, 그리고 이후
라이브에서 더멋지게 연주될 Pionners over 'C'는 본작이 그리 쉽게 평가절하될
작품이 아니란 걸 항변하고 있다.
Pawn Hearts
아주 오랜 옛날 부터 우리는 권선징악적인 플롯에 익숙해져 있다. 사실, 수많은
전래동화를 살펴보면, 선악이 존재하고 이들이 서로 갈등하다가 우여곡절끝에 선이
승리하고야 만다는단순한 구조로 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어떤 배경이
설정되느냐, 그리고 어떻게 개연성이 효과적으로 유지되느냐가 그작품의 우수성을
결정하는 요인이 되어왔다.
음악도 예외는 아니어서 가장 완벽한(?) 형태의 구조를 추구했던 고전주의 이래로
발단-전개-절정-결말 이라는 단순한 구조는세속적인 인기를 누려왔다. 그것은 '모든
문제는 긍정적으로 해결되어야한다'는 맹목적인 믿음에 근거한다고도 볼 수
있다.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갈등은 갈등을 낳고 또 갈등을 낳고...그럼에도
아직까지 그런 구조를 추종하는 작가들이 있다면 그는 구시대적 헤겔미학의
추종자이거나, 아니면 동화수준의 작품을 쓸 수 밖에 없는 정신세계의 작가이거나,
아니면 영리하게도대중의 기호에 영합하여 인기를 얻는 비결을 아는 작가일 것이다.
만일, 피터 해밀이 그러한 작가군에 끼었더라면 VDGG의 음악은 우리가 아는 것
보다더 더 달콤하고 극적인 것이 되었을 텐데...하지만 피터는 그러한 세속적인
치장을 거부했다. 세상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 처럼 그렇게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곳이
아니란 걸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에...(라고 필자는 추측하고 있다^^;;)
그들의 음악에는 지향점이 없다. 모든 것이 사고의 흐름을 따라죽 나열되어 있다.
그리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많은여백이 남겨져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생각하는
자'의 몫이다.아쉽게도...지극히 관념적인 작품이 되고 말았지만.
그렇지만, 이 작품은 의미없는 감상만을 전달하는 다른 작품과는비교할 수 없는 진짜
'예술작품'이다. 물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단, 3곡으로 구성된 대곡지향의 작품. 'A Plague of LighthouseKeepers'는 그들의
이상이 가장 잘 구현된 작품일 것 이다.
Godbluff
전작인 Pawn Hearts가 71년에 발표되었고, 본작이 75년에 발표되었으니 상당한
공백기가 있었던 셈이다.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전혀 모른다.^^;;
다만, 추측할 수 있는 건 밴드가 상당히 지쳐있었고 그들 자신의 한계를 느꼈기
때문에 활동을 잠정적으로 중단했을 거란 것이다. 사실, 네번째 작품을 낼 당시,
그들의 음악은데뷰 당시와 크게 변한게 없었다. 고뇌의 작가, 피터 해밀이이러한
점을 모를리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매우 착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음악적
야심을 위해 다른 멤버를희생시킬 수 없었던 것 같다.(로버트 프립을 생각해보자.)
할 수 없이 그동안 솔로 프로젝트의 형식으로 자신의 욕구를 해소하게 된다. 그래서
공백기에는 해밀의 몇장의 솔로 앨범이 발표되는데, 이 시기에 발표되었던 솔로
앨범에는그가 해보고자 했던 다양한 음악들이 담겨있다. 다른 멤버들에겐 미안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음악적으로만 본다면 해밀의솔로 앨범들이 내용은 더 우수하지
않나 싶다.(나중에 소개^^)
공백기를 거쳐 오랜만에 발표된 본작은 분명 뭔가 달라진 사운드를 담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공백기를 거친 밴드들이힘이 떨어진 새 작품을 들고 와 옛 팬들을
실망시키는 관례(?)가 이들에게도 어김없이 적용되는 듯 하다.
좋게 말하자면, 본작은 상당히 차분해진 느낌이다. 난데없이 급박하게 전개되곤 하던
연주 스타일을 여기서는 전혀 찾아 볼 수 없으니. 하지만, 변화는 그것만일 뿐,
무덤덤한 나열식 구조는여전하다. 그리고 가사의 내용을 살펴보면, 더욱 더
내면으로침잠하는 듯한 느낌이다. 이제는 무엇을 말하고자하는지 조차 파악하기
힘들다. 생각은 꼬이고 꼬이고...
해밀의 목소리는 더욱 더 신경질적으로 변한 듯 하다.
처음에 희망에 찼던 젊은 목소리는 어디로 갔는지...아쉽다.
VDGG의 음악을 들으면 뭔가 허전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곰곰히 살펴보면 그건
Elec. Guitar의 부재가 하나의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렉트릭 기타는 록 뮤직에 있어서 심장과도 같은 존재이다. 심포니에서는 모든
악기가 하나의 거대한 심상을 형성하지만,록 뮤직에서는 일렉트릭 기타 하나로
충분하다. 그런 악기가 빠지다니...
앞서도 설명했듯이 해밀은 록 뮤직에서 감정이 철저히 억제된 상태의 관념적인 음악을
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물론, 기타 세션이 없었던건 아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의 작업의 액세서리에
불과했다. Pawn Hearts를 들으며 프립의 향취를 느낄 수 있었던가? (자존심이 강한
프립이 그런 일을기꺼이 했다는 건 해밀의 카리스마가 한 수 위란 증거가
아닐런지...)하지만, 그 한계는 분명했다. 그는 마치 육체와 정신을
분리하려는오류를 범했던 것 같다. 지드의 '좁은문' 처럼...
본작업을 마친 후, 그도 그러한 한계를 분명히 느꼈던 것 같다.비슷한 시기에
발표되었던 그의 솔로작은 본작과는 상당한 거리가 느껴지는 펑크틱한 내용을 담고
있을 정도니까.하지만, 많은 사람들과 같이 작업해야하는 밴드의 작업에 까지 그럴
수가 있었을까?
Still Life
아마도 가장 '해밀다운' 작품이 이 것이 아닐까 한다.
전작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옆에서 속삭이는 듯 부드럽게변해있다. 경망스레 날뛰던
잭슨의 색서폰도 따라서 차분하다. 이 모든 것이 세련된 연륜의 반영일까? 물론,
잃은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작품만놓고 본다면 그러한 변화는 충분히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할 만 하다.
해밀의 리더로서 뛰어난 점이라면, 무엇보다도 작품의 내용과 형식을 훌륭히
결합시킨다는 점일 것이다. VDGG의 음악이 작품마다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해밀의
컨셉에 따라 가장적합한 형식을 따랐기 때문이다.
해밀의 시선이 가장 내면적이라 할만한 이 작품이 쉽게 마음에 와닿는 것도 그런
때문일 것이다. 한 인간으로서자신과 타인, 그리고 그들의 관계속에서 생기는 사랑,
고통, 희망, 그리고 절망을 훌륭히 표현해낸 작품은 이 작품이외엔그리 쉽게
떠올리기 힘들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듣고 느끼며 공감할 만한 명작이다.
World Record
마침내 안정을 찾은 듯했으나 VDGG의 사운드는 또다시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전작이 마치, 자신을 질책하는 듯한 내용과 가라앉은 분위기의 차분한 작품이었다면,
본작은 매우 희망에찬어조로 자신의 환희를 표현하는듯 강렬한 느낌을 준다.이러한
느낌은 첫곡에서 부터 강하게 와닿는데, 마지막곡에 이르면 거의 베토벤의 10번
교향곡을 연상시키는밝은 분위기로 마감하게된다. 대단히 이례적인 사건이아닐 수
없다. 어쩌면 해밀의 장대한 서사시가 대단원에막을 내리는 것일까?
사실, 이 작품 이후 한장의 스튜디오앨범과 나머지 한장의 라이브 앨범이 발표되긴
하지만 이것은 해밀의 거대한 컨셉의 부록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즉, 해밀의 사상적인, VDGG의 음악적인 일단락은 본작에서 이루어 졌다고 보아도 좋을
듯 하다.
이 작품은 여러 면에서 절충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특히, 기타의 도입은 VDGG의
사운드의 모습을 많이 바꾸어주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이 작품의 하일라이트라
할만한(물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Meurglys III'는 이전,VDGG의 사운드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정통(?)' 프로그레시브록 스타일의 작품이다. 아마, VDGG의
사운드에 크게호감을 느끼지 못했던 사람이라도, 일반적으로 기타가 리드하는 영국
아트록을 좋아한다면 이곡에 강한 호감을 느낄 것이며, 왜 진즉 이런 작품을 만들지
않았는지 의아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이 곡은가장
VDGG답지 않은 곡일 것이다. 키보드와 관악기만으로새로운 스타일의 진보음악을
만들고자 했던 그들의 의도가 실패였음을 자인하는 행위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해밀 자신도 그러한 문제점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모순된 양
측면을 가슴 속 깊이 느꼈던 그였기에 마찬가지로, 음악적인 면에서도 어떠한 완결된
상태를 지향하기 보다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겨두고 싶어했는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