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 A N G E L I S -- 1492 O.S.T [Conquest Of Paradise]
많은 수의 대가들이 점차로 자신들의 음악적 방향을 예전
과달리하고 있다.
그것은 더이상 음악계에서 낯설거나 충격적인 일은 아니다.
많은 명그룹들이 자신들이 추구하였던 예전의 그 순수했던
음악적 열정과실험성을 멀리하고 대중에 영합해, 자신들을
사랑했던 진정한 팬들을 멀리하고 이상한 음악들을 하곤
하는 것이다.
성공이후에는 꼭 따르곤 하던 이같은 음악적 변신들. 예전
의 진정한 팬들은 그러한 뮤지션들을 보며 안스러움과 실
망을 느끼기도 하고 심하게는 배반감에 슬퍼하기도 하는 것
이다.
이제는 완벽한 오버그라운드 화로 그래미 시상식에 마저 모
습을 드러내며, 메탈계의 공룡이라 불리우는 메탈리카. 그
들은 언더그라운드 시절의 공격적이고 파괴적이며 직선적이
던 음악적 메세지와 사운드를버리고 새로운 변신을 꾀하고
있다. 그들의 5집에 쏟아진 갈채와 엇갈려예전의 그 야수적
모습에 향수를 느끼는 고전적 팬들의 질타와 비난들. 데스
메탈계에서 탄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오비튜어리의 3집
앨범역시 1집을 사랑하던 사람들의 맥을 빠지게 하였으며,
듣기 괴로울 정도의 음침한 분위기와 무겁고 둔중한 사운드
로 둠메탈의 새로운 전형을 창시했던 카테더랄 역시 2집에
서(EP 제외) 철저하고 당혹스러울 정도의 심한 변신을 꾀하
여, 팬들로 하여금 진정한 대중성은 무엇이며 대중을 이끌어
야 하는 순수한 전위의 모습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하였다.
전자음악의 경우에도 이러한 음악적 변신들은 극심하다.
당대의 명키보디스트 릭 웨이크먼이 그렇고 독일 전자음악
의 대부, 텡저린 드림이 그렇고, 커브드에어, 록시뮤직,유
케를 거쳐간 불세출의 키보디스트 이자 일렉트릭 바이얼린
주자 에디좁슨이 그렇고 지금 소개하고자 하는 반젤리스가
그렇다.
이들 4명의 아티스트에게는 다들 공통점이 있다. 바로 프
로락에서 뉴에이지로의 음악적 전환, 변신이라는 것이 그것
이다. 그런데 텡저린드림이 'optical race' 앨범에서의 변
신은 어떤 모습이었던가. 그것은 바로 경악 그 자체였다.이
앨범을 구입하던 89년도 당시, 나는 이 앨범을 불속에 집어
던져버리고 싶었을 정도이다. 그 이후 나는 이 앨범을 내가
갖고 있는 여러 앨범중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과 더불어
최악의 판으로 분류해놓고 있고, 단 한번도 제대로 듣지 않
은 채 깊숙히 던져두고 있다. 이토록이나 자신의 음악 색깔
을 급박하게 바꾸게 한 원인은 어디에 있었을까. 새로운
음악적 돌파구를 찾기 위한 한 모색이었을까, 아니면, 결
국 대중앞에 백기를 들고 항복해버린 다 늙어빠져 음악적
영감이노쇠해버린 노장의 모습일 뿐일까.
하지만 릭 웨이크먼의 모습은 텡저린 드림의 모습보다는 훨
씬 좋았다. 릭 웨이크먼의 뉴에이지적 솔로 앨범들은 그의
웅장하고 비장감 어린 과거의 음악적 스타일이 그대로 묻
어있고, 뉴에이지음악들이 자칫 범하기 쉬운 음악적 단순성
을 ---[물론 모든 뉴에이지 음악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
니다. 뉴에이지 음악에 대해서 우리는편견을 가질 수 있는
데, 뉴에이지 음악에도 계층이 있을 수 있다. 뉴에이지류의
모든 음악들이 단순성과 상업적 특성들을 갖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것은 하나의 새로운 사조라고 할 수있다. 뉴에
이지 음악이 등장할 당시에 이런 음악을 엘리베이터 뮤직
이라고도 불렀다. 듣기 쉽고 부담감 없는, 엘리베이터를
타서 몇십초내에 간단히 듣고 마는 소품 위주의 경박한 음
악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뉴에이지 음악에
퍼부어진 일종의 지독한 편견일 뿐이다.]---- 휼륭하게 극
복해서 서정적이고 비장감어린 음악적 감동을 듬뿍안겨주
었다.
1492 앨범에서 보여준 반젤레스의 모습 역시 그 음악적 분
위기가 다분히 뉴에이지 음악에 굉장히 근접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반젤리스는 너무나 잘 알려진프로그래시브 전자
음악의 대가이다.
데미쓰 루쏘스와의 작업에서 그는, 데미쓰 루쏘스의 신비
한 보컬과 함께 독특한 자신만의 민속적 필링을 잘 살려내
어 수준있는 음악을 해왔고, 예쓰에 가입할 뻔 했던 그는
천사의 목소리를 가졌다는 예쓰 출신의 보컬리스트 존 앤더
슨과의 공동작업을 해오며 신비롭고 처연할 정도의 아름다
운 음악을 들려주었다. 그가 발표한 여러장의 솔로 앨범등
은 실험정신과 클래시컬한 웅장함등을 거의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전자 음악의 백미였었다.
그는 이제 새로운 음악전 변신들을 꾀하기 시작했다. 이
러한 변화는 이미 벌써, 1492 O.S.T 가 발표되기 그 이전부
터 꾸준히 보여준 모습이기도 하다. 상업적 성공에 힘입어
그는 예전처럼 신비롭고 독특한 사운드와 개성있는 주제를
다루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그의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무엇인가 이유를 알 수 없이 마음이 편안해지고 푸근해짐
을 느낄 수 있다. 대가만이 들려줄 수 있는 지극히 세련된
음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변화에 나는 배신감이나 당혹스러움은 전혀
느낄 수없으며 오히려 즐겁고 기쁜 마음을 느낄 따름이다.
그는 경륜이 붙음에 따라 점점 더 성숙되어가고 있고 이제
는 거의 완숙의 절정에 오르고 있는 것이다.
실험정신이 극대화되면 오히려 난해하고 지루해지기 쉽다.
순수하고 실증나지 않는 실험정신은, 그러나 자칫하면 모
호해지고 해석할 수 없는 깊은 미로에 빠져 연주자 스스로
헤어나지 못할 때도 있는 것이다. 그것은 기초도 제대로 잡
혀 있지 않은 화가가 이상한 추상화를 그려대는 것처럼 우습
고 경망스러운 일일 것이다.
이제 반젤레스는 지극히 아름답고 세련된 구상화들을 그려
내고 있다. 듣는 이로 하여금 사랑하는 사람의 품에 안겨
안락한 휴식을 맞이할 때의 그 느낌 그대로, 그는 마음의
풍경화를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만약 몸과 마음이 지쳐
서 어딘가에 기대고 싶거나, 안개가 가득이 끼인해변가를
산책하고 싶은 마음이 들때는 바로 이 앨범을 들어야 한다.
그러나, 우울하고 어두운 마음일 때 이 음반을 듣는 것은
좋지 않다. 이것은 암흑처럼 깜깜하거나 애조를 띤 슬픈 음
악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앨범은 동이 서서히 터오르는 새
벽 여명의 바다가를 표현한, 밀물처럼 감동이 몰려오는 그
런 음악인 것이다.